[기자의 눈/유성운]연극협회의 주먹구구식 신연극 100돌 사업

  • 입력 2008년 2월 21일 03시 00분


“‘한국 신연극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습니까?”

연극인과 팬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만한 이 말을 한국 신연극 100주년 기념사업을 주최하는 한국연극협회 박계배 이사장에게서 들었다. 지난해 2월 취임한 박 이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임 이사장 때의 일이어서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회는 2006년 말 장민호 백성희 씨 등 원로 배우들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연극인 100여 명이 모여 출범했는데도 이사장이 몰랐던 것이다. 연극계는 1908년 이인직의 ‘은세계’ 공연을 기점으로 올해를 100주년으로 삼고 있다.

한국연극협회는 15일 연중 ‘기념사업’의 첫 행사로 3월 27일 극단 미추의 ‘연희당의 하늘’을 아르코 대극장에서 공연하겠다고 밝혔다. 이 공연은 협회가 뒤늦게 기념사업의 첫 작품으로 선정하면서 서둘러 준비에 들어갔다.

공연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야 첫 작품을 선정한 것에 대해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추 측도 작품의 규모로 보아 국립극장 대극장을 요구했으나 결정이 늦어지면서 국립극장을 빌릴 수 없었다. 한 배우는 “학예회 행사도 아닌데 연극 100주년 행사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한국연극협회는 또 100년사를 정리하는 기념출판사업, 박물관 건립 추진, 100주년 기념 희곡 공모,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설, 전국 소극장 네트워크 페스티벌 등을 밝혔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기념출판사업은 이제 자료 수집에 들어갔고 박물관은 용지를 알아보고 다니는 정도다. 특히 연극을 지탱하는 한 축인 관객들을 배려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기념조각품 제작, 기념책자 발간 등 의례적이고 전시성 짙은 프로그램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연극협회는 “지난해 말 예산이 확정돼 1월에 집행된 데다 액수도 10억 원밖에 안 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진위가 1년 전에 출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무슨 일을 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오히려 연극협회와 상관없이 일부 사설 극장과 연극인들이 주도해 연일 매진을 기록하는 ‘연극열전2’가 더 돋보인다. 연극열전2는 지난해 말 시작해 관객의 호평을 받고 있으며 연말까지 이어진다.

유성운 문화부 polari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