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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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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윤택하게 하는 이런 마음의 여백을 고도 자본주의 시대는 인정하지 않는다. 화려한 신제품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효용가치가 다한 상품은 즉각 폐기 처분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새것은 좋은 것과 동의어로 간주된다. 멀쩡한 물건을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팽개치고 끊임없이 신제품을 사들이는 것이다.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버려지는 휴대전화가 산처럼 쌓이고 제품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진다.
한 세대 만에 산업화를 성취한 압축성장의 결과 유례없이 역동적인 사회가 탄생했지만 그만큼 ‘새것에 걸신들린 사회’가 되고 말았다. 한국 소비자의 자동차 교체 주기도 전 세계에서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새것 콤플렉스’가 제2의 천성이 된 곳에서는 가족과 휴식의 거처인 집조차 고유의 뜻을 잃고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다. 집이 우리 가족과 동네의 기억이 새겨진 정겨운 장소에서, 시가 얼마짜리 재테크 물건으로 타락하는 것이다.
새롭던 盧대통령-386의 오늘
역동적 소비사회의 행태는 정치 영역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압축성장은 숨 가쁜 압축적 민주화를 동반한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정치권 물갈이 요구가 커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조정 역할을 하는 정치권에 다양한 전문가들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후렴되는 물갈이론은 중대한 맹점을 안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과잉 기대와 총체적 환멸은 기묘한 방식으로 서로 동행한다. 선거마다 참신한 정치 신인이 정치권에 대량 수혈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또 다른 새것을 찾아 계속 떠다니는 소비자의 마음이 허전한 것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기대와 환멸의 이중주가 정치를 더 황폐화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정치인 노무현의 참담한 퇴장에서 불과 5년 전 그가 혜성처럼 떠오르던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노무현이 몰락에 가까운 종말을 맞게 된 것은 물론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새것을 일방적으로 선호하는 유권자의 정치소비 패턴에도 일말의 이유가 있다.
5년 전 썩어빠진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노무현은 얼마나 참신해 보였던가? 그의 직설법은 진정성의 표출로 여겨졌고 좌충우돌이 인간미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결국 새 포장에 현혹된 정치소비자가 불량상품을 집단적으로 충동구매하고 만 셈이다. 새것에 대한 과잉 기대는 한국 정치에 구조화되어 있으며 이명박 정부 출범의 한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이라는 ‘정치 신제품’의 문제는, 그가 검증되지 않은 불안정한 신인이었다는 점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 청문회 반짝 스타라는 포장 외에 실력과 인품, 경륜이 증명되지 않았던 것이다. 탄핵 사태로 급부상한 386 정치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새것이 자동적으로 좋은 것은 아님’을 입증하는 명백한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이나 정치 지망생의 자질을 판단할 때 화려한 젊음이나 참신함 같은 겉모습보다 경륜 능력 일관성 책임윤리를 점검해야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 만연한 한국 정치의 수준을 격상시킬 수 있는 원숙한 ‘올드 보이’가 정말 필요한 곳이 정치 영역이다. 갈등과 대립을 넘어 통합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도 여러 정파와 시민들로부터 함께 사랑받는 정치인이 출현할 때가 되었다.
정치지망생, 젊음보다 경륜 봐야
현대정치사 최대의 정치인 중 한 사람인 김대중(DJ) 씨가 총선을 앞두고 다시 공(公)보다 사(私)를 앞세우는 노추(老醜)를 보일 때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old is beautiful)’는 말은 빈말이 된다. 정이 가는 오래된 존재가 주위에 많을 때 삶은 따뜻해지고,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있어야 공동체가 안정된다. 그냥 빛나는 젊음과는 달리 삶의 풍상을 통과한 인격과 온유한 지혜로 노인은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정치 영역에서도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 pjyoon5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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