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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13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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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른 건 몰라도 문화는 우리가 일본에 한 수 가르쳐 줬던 것 아니었나. 일본 호류(法隆)사 금당벽화를 그린 고구려 승려 담징부터 일본에 유학과 한학을 전해준 백제의 왕인 박사와 아직기, 쇼토쿠(聖德) 태자의 스승이라는 아좌태자의 이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외웠던가.
뒤바뀐 한국과 일본의 처지
그뿐인가. 조선통신사가 갈 때마다 선진문물을 배우려는 일본인들이 줄을 섰다지 않은가. 그런 자부심은 점점 커져 일본의 국보 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우리의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빼닮은 것으로 미루어 한국에서 건너간 게 틀림없고, 일본 왕실의 뿌리는 백제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믿는 데까지 달려간다. 우리가 일본 문화에 우월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과거의 영화를 곶감처럼 빼먹고 사는 건 부질없다. 우리는 문화와 문화재를 만드는 데는 한때 일본에 앞섰으나 보존하는 데는 졌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시골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의 역사를 알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는 도서관이나 문화원을 찾아가야 한다. 간다고 해서 원하는 정보를 얻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다르다. 그 마을로 바로 가면 된다. 몇 집을 돌아다니고, 절이나 신사를 찾아가면 여기저기서 정성스레 보관해온 빛바랜 편지와 족자, 그림과 고서 등이 쏟아져 나온다. 그 마을의 유래와 인물, 그 마을과 관련된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기록하고 보존하고 전해주는 걸 즐겨 하는 일본 특유의 민족성 덕분이다.
그런 배경을 모르고 “일본은 1년에 한 번씩 ‘문화재 화재 방지의 날’이란 행사를 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더라”라며 제도만을 흉내내 봤자 말짱 헛것이다. 이는 마네킹에 명품 옷을 입혀 놓았으니 숨을 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숭례문 복원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높으신 분들 모셔 놓고 기공식 하고, 포장 두르고 몇 년 공사한 뒤, 깜짝 쇼 하듯 공개하는 것으로 자족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는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기도 하지만, 바로 내 옆에서 숨 쉬고 있는 가족 같은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 줬으면 한다. 그래야 진정 아끼고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숭례문 복원 과정을 꼼꼼하게 영상으로 기록해 다큐멘터리로, 영화로, 교재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에는 숭례문의 소중함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복원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고뇌와 환희, 좌절과 성공, 실패와 도전의 이야기가 반드시 담겨야 한다. 이는 역사의 무게를 잃어버린 숭례문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어 존재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일본의 고도 나라(奈良)의 야쿠시(藥師)사. 1300여 년 전에 세워진 이 명찰의 금당은 1528년 전란 중에 방화로 소실됐다. 역대 주지들의 비원(悲願)이 금당 복원이었다. 그 꿈은 450년가량 지난 1976년 4월 1일에야 비로소 이뤄진다. 전후 일본 최대의 목조건축물 복원이라는 찬사와 함께.
인간의 숨결 느끼게 복원해야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은 주지의 눈물겨운 기금 모금과 예전의 조각 기록을 모아 금당의 모양을 그려낸 학자들의 열정, 그리고 ‘독종’으로 불린 대목장 니시오카 쓰네카즈(西岡常一)의 탁월한 실력이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에도 있을 법한 스토리다.
다른 게 있다면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복원의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2000년 10월 ‘환상 속의 금당, 제로로부터의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초점은 금당의 미려함과 웅장함이 아니었다. 문화재 복원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열정과 지식, 실력을 극한까지 헌상한 사람들에 대한 휴먼 다큐멘터리였다.
이 방송은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믿게 만들었다. 비록 최근에 만들었지만 이 금당은 1300년 전에 처음 만든 금당이나 마찬가지라고.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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