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희한한 대선

  • 입력 2007년 12월 16일 20시 12분


BBK가 대선 판에서 춤춘 지는 오래됐다. 어디 그뿐인가. 부동산 투기 의혹에다 자녀 위장전입과 위장취업 등 숱한 펀치가 이명박 후보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이 후보의 지지율 1위 독주는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이전에는 1위 순위가 더러 바뀌기도 했는데 말이다. 선거일이 다가오면 1, 2위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는 게 보통인데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왜 그럴까. 이 후보의 경쟁력이 특출해서? 아니면 경쟁 후보들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김근태 씨의 이상한 말처럼 혹시 국민이 노망들어서? 이유를 찾자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물론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여론조사 같은 객관적 자료를 들여다보고 전문가들의 얘기를 참고해 개연성 높은 이유를 추측해 볼 뿐이다.

전문가들은 대선의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집권세력을 심판하는 회고적 투표와 후보의 미래 가치를 보는 전망적 투표가 그것이다. 정당정치가 발달한 선진국은 회고적 투표의 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정당정치가 일천한 나라에서는 인물 위주의 전망적 투표가 주로 이뤄진다. 역대 대선이 대체로 그랬다. 2002년 김대중 정권의 인기가 형편없었지만 여당 후보가 당선된 것도 그렇게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번엔 양상이 좀 다르다. 작년 5월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싹쓸이에서 보듯 이미 오래전부터 ‘못 살겠다 바꿔 보자’는 국민의 욕구가 강하게 나타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지지율이 늘 60%를 맴돈 것이나 지금 같은 보수 후보인 이명박-이회창 지지율이 60%에 육박하고 있는 것, 도덕성 문제에도 이명박 후보가 끄떡없는 것이 그 증거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누가 한나라당 후보가 됐더라도 양상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 와해된 것도 또 다른 이유이다. 5년 전엔 지역 이념 세대별로 지지 후보가 뚜렷이 구분됐다. 여권은 지역으로는 호남과 충청, 이념으로는 진보와 중도, 세대로는 20대와 30대가 고정 지지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공식이 완전히 깨졌다. 모든 이념층, 모든 세대가 이명박 후보 편이다. 지역도 여권은 호남에서만 우위를 보일 뿐이고, 그마저도 지지세가 이전보다 약해졌다.

여론조사를 보면 2002년 노무현 후보를 찍은 사람들 중 25% 정도만이 지금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75%는 떠났다. 이명박 후보 쪽으로 옮겨간 이도 25% 정도 된다. 열린우리당 분당, 말만 요란하고 일은 제대로 못하는 정권의 무능함, 대통령의 연정(聯政) 제의를 둘러싼 갈등, 국민을 가르치려는 오만함 등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대체로 분석한다. 모두가 여권이 자초한 일이다.

그러나 여권은 이를 정공법으로 치유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위장(僞裝)정당처럼 현란한 변신으로 국민의 눈을 속이려는 꼼수를 택했다. 그리고 과거처럼 막판 짝짓기와 상대 후보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네거티브 한 방이면 역전이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 10년간 권력에 취하다 보니 확실히 감(感)이 떨어진 모양이다.

대선 막판에 ‘BBK 동영상’까지 등장했다. 지금까지와 같은 희한한 대선이 그대로 유지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 진 녕 논설위원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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