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김경준 진실 게임’

  • 입력 2007년 11월 1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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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한 젊은이의 입’에 정치권을 비롯해 온 나라의 이목(耳目)이 이토록 집중된 적은 없었다. 김경준의 한마디에 이명박이 울고 이회창 정동영이 웃지 않을지 긴장과 우려, 기대와 호기심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한나라당은 자칫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여권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바심을 내고 있다. 검찰은 ‘뜨거운 감자’를 한 입 가득 물었다. 뱉을 수도 없고 삼키기도 어렵다. 한나라당은 “검찰이 정치 공작적 태도를 보인다면 민란(民亂)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이방호 사무총장)고 을러대고, 대통합민주신당은 “국민은 촛불집회라도 해서 검찰을 지킬 것”(김효석 원내대표)이라고 역성들듯 압박한다.

을러대고 숨죽이는 정치권

도(度)가 지나친 소리들이다. 금융사기 피의자를 송환해 수사하는데 민란은 뭐고 촛불집회는 또 뭔가. 이명박 후보의 말처럼 김경준 송환은 “정치적 문제가 아닌 법적 문제”이다. 정치권은 공정수사를 촉구하고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면 된다.

1992년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이명박은 1996년 15대 총선(서울 종로)에서 당선돼 지역구 의원이 됐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1998년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다. 1년을 미국에서 보내고 1999년 12월 귀국한 그는 사이버금융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와 친분이 있던 재미동포 여성 변호사 에리카 김이 그 분야 전문가라는 남동생을 소개했다. 김경준과의 악연(惡緣)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명박은 2000년 2월 투자자문회사 BBK 대표이던 김경준과 30억 원씩 투자해 인터넷금융회사 LKe뱅크를 설립했다. 그러나 2001년 3월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김경준이 BBK 자본금 30억 원을 LKe뱅크 자본금으로 유용(流用)하고 서류를 위조한 사실 등이 밝혀지자 같은 해 4월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이명박 후보는 그때 김경준과의 관계도 정리했다고 한다. 그 후 벌어진 주가 조작은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김경준은 금융감독원이 BBK의 등록을 취소하자 새로 창업투자회사 옵셔널벤처스를 만들어 주가를 조작했고 2001년 12월 384억 원을 빼돌려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2004년 5월 미국 검찰에 체포됐다.

간략한 과정을 보면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댔던 이 후보가 수업료만 내고 손을 턴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점이 여럿 있다.

8월 13일 검찰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불거진 이 후보의 ‘서울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도곡동 땅의 절반은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 씨 것이 맞지만 나머지 절반은 이 후보의 큰형 상은 씨 소유가 아닌 제3자의 재산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제3자’는 누구인가?

이 후보의 큰형과 처남이 대주주인 자동차부품업체 다스는 BBK가 운용하던 MAF펀드에 190억 원의 거액을 투자했다가 140억 원을 날렸다. 100억 원을 투자했던 삼성생명은 원금과 투자수익을 모두 되돌려 받았고, 50억 원을 투자했던 심텍도 소송을 벌여 투자금을 회수했다. 다스는 50억 원만 건졌을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의문은 여권이 주장하듯 ‘다스와 BBK의 실제 주인은 이명박’으로 확장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해 순수익이 30억 원(2000년) 수준이던 다스가 BBK에 190억 원을 투자하고, 남들은 회수한 투자금도 제때 받아내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나라 위해 의혹 말끔히 털어야

이런 식의 의문은 도곡동 땅 매각 대금-다스-BBK를 하나의 연결고리로 엮으려는 추론(推論)일 수 있다. 이 후보와 BBK의 관계는 이 후보 측이 주장하는 대로 김경준이 관련 서류를 위조했거나 일방적으로 이 후보의 이름을 팔았을 수도 있다.

이 후보는 얼마 전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되더라도 BBK와 관련돼 문제가 있다면 직을 걸고 책임지겠다”고 단언했다. 공당(公黨)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허투루 말했을 리 있겠는가. 그러나 의혹은 말끔히 털고 가야 한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내일을 위해서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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