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이회창 씨가 아니라 국민 보고 뛰어라

  • 입력 2007년 11월 5일 0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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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서기 위해 금주 중 탈당을 강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한나라당은 ‘잠행(潛行)’ 중인 그의 출마를 말리려고 어제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제 이 전 총재가 설령 출마 의사를 접는다 하더라도 당심(黨心)과 민심이 합법적으로 선택한 대선 후보를 밀치고, 자신의 대권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한국 정당사(史)에 전례 없는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가 지금 보이고 있는 행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 약속 번복이나 이인제 민주당 후보의 10년 전 신한국당 경선 불복보다 그야말로 ‘죄질’이 나쁘다. 이 전 총재는 동지들이 여름 내내 비지땀을 흘려 가며 농사를 지을 때는 뒷전에서 에어컨 바람만 쐬다가 추수(秋收)하려는 순간 낫 한 자루 달랑 들고 나타나 ‘내 곡식이야’ 하는 식의 염치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DJ나 이인제 씨는 적어도 그러지는 않았다.

이 전 총재 측이 올 3월부터 손수제작물(UCC) 전문 업체와 접촉해 가며 대선용 홈페이지 개설을 준비해 온 게 사실이라면 더욱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당이 좌파정권과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는 뒤에서 몰래 딴살림을 궁리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정치인보다도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두 번이나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두 번의 실패로 ‘죄인(罪人)’이 됐음에도 한나라당과 지지자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설사 이명박 후보에게 무슨 ‘유고(有故)’가 생겨 당원과 지지자들이 일제히 추대를 하더라도 “내가 나서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있지 않느냐”고 말해야 할 사람이 바로 그다. 지금 가상 지지율이 20%가 아니라 두 배가 된다 하더라도 그렇다. 우리 정치를 다시 10년 전으로 후퇴시킨 그의 구태(舊態)와 최소한의 민주주의 게임 규칙마저 유린한 폭거(暴擧)는 우리 정치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전 총재가 어떤 선택을 하건 국민만 보고 뛰어야 한다.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50%를 넘고 있다. 한나라당이 단합하면 이 전 총재가 훼손한 원칙, 이 전 총재가 추락시킨 정치에의 신뢰를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이회창 후보 단일화나 권력분점 같은 타협론이 나오고 있다지만, 그건 원칙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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