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떤 過去를 더 기억해야 하나

  • 입력 2007년 10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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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경북도지사 공관은 눈물바다가 됐다. 경북도 초청으로 40년 만에 고향을 찾은 독일 파견 광원과 간호사 40명은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에 힘겨웠던 이국 생활의 응어리를 풀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하 2000m 막장에서 석탄을 캤고, 말이 간호사였지 하루 종일 숨진 환자들의 시신을 닦아야 했던 모진 세월이었다.

이들의 험한 삶을 잊고, 불과 30여 년 만에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자랑할 수는 없다. 이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보낸 돈이 경제개발의 종자돈이 됐다. 나라가 오죽 가난했으면 독일정부의 차관(借款)을 얻기 위해 이들의 월급을 담보로 맡겨야 했을까. “우리의 땀과 눈물을 고국의 젊은이들이 잊지 말아 줬으면 한다”는 이들의 말을 경청해야 할 사람들은 또 있다. ‘산업화 세대’를 폄훼하고 있는 좌파세력이다. 베트남과 중동에서 피와 땀을 흘린 세대 또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뤄 낸 주역이다.

마침 어제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가 3년에 걸친 조사활동을 마무리했다. 김대중(DJ) 납치, KAL 858기 폭파, 인혁당 사건 등 7가지 ‘과거사’에 관한 조사 결과는 더러 새로운 내용도 있고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친 것도 있다. 그러면서 현재 진행형인 386 간첩단 사건은 미봉해 버렸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는 모두 16개로 이 중 12개가 현 정부에서 출범했다. 100여 년 전의 일까지 들춰 냈지만 당초 취지였던 ‘진실과 화해’는 간 곳 없고 분열과 갈등만 낳았다. 국정원 과거사위원장이던 오충일 씨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자리를 옮길 만큼 위원과 직원 대부분이 친여(親與) 친노(親盧) 성향의 사람들이다. 이 정부가 과거사 파헤치기에 쓴 국민 혈세가 수천억 원이지만 코드와 정략(政略)을 넘어 진정 국민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한 일이 있는가.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의 일그러진 역사를 밝혀 바로잡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어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취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성취를 위한 의지와 열정을 이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욕(汚辱)의 역사만을 기억하고 자학(自虐)하는 국민은 그 상처와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 리더십의 요체는 과거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과거를 바탕으로 국민의 에너지를 새롭게 모으는 데 있다. 그래야 나라가 미래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정부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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