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역주의 망령 불러내 선거판 흔들려는 범여권

  • 입력 2007년 10월 22일 2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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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DJ) 국민회의 후보는 호남에서 92.9%를 득표했다. 김종필(JP) 자민련 후보와의 DJP 연대로 충청권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보다 40만 표를 더 얻었다. 2002년 대선 때 DJ의 지원을 받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호남에서 92.3%를 득표했고, 충청권에서 이회창 후보보다 25만 표를 앞섰다. 충청권 우위는 노 대통령 스스로 “재미 좀 봤다”고 말한 신행정수도 공약 덕분이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평소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다가도 막상 선거 때가 되면 후보연대와 공약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겨 이득을 챙기는 현실을 지난 두 번의 대선 결과가 잘 보여 준다. 이번 대선에서도 참으로 우려스러운 지역주의 망령이 꿈틀거리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 등 이른바 범여권을 중심으로 호남 충청 수도권을 잇는 ‘서부 벨트’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이인제 민주당 후보는 며칠 전 ‘충청 출신 대통령’을 거론하면서 ‘서부벨트 단합론’을 주장했다. 대선을 정당의 정체성이나 정책과는 상관없이 아예 지역구도로 치르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과거 대선에서는 그래도 비판 여론을 의식해 표현을 조심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아예 노골적이다. 대선이 임박했는데도 여전히 국민 지지도가 형편없으니 ‘DJP의 추억’에 매달리는 것인가.

신당에서 거론되고 있는 ‘호남+충청 연대론’이나 민주당 등과의 후보 단일화 구상도 결국은 원칙도 명분도 없는 ‘반(反)한나라당 지역연합’을 만들려는 것이다. 전북 출신의 정동영 후보가 ‘DJ의 대리인’인 박지원 씨를 대선기획단 고문으로 위촉하려던 것도 그를 통해 ‘호남 대표성’을 강화하려는 제스처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 DJ가 있음은 물론이다.

지역주의는 국민의 이성을 마비시켜 합리적인 선택을 저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퇴영적인 정치행태다. 지역주의의 적폐(積弊)를 도려내고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할 대선 후보들이 다시 그 망령을 불러내는 굿판을 벌이는 것은 우리 정치문화가 아직도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깨어 있는 국민이라면 이를 용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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