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손이 속을 숨긴다-수단과 목적의 모순

  • 입력 2007년 10월 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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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상생의 정신을 역설해 마지않는 친구가 있다. 불을 뿜는 듯한 그의 열변을 들으면 나처럼 굼뜬 위인도 거의 동의 않고 버티기가 힘들다. 다만 그는 입에 침을 튀기며 대화와 상생의 정신을 역설하면서도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남에게는 발언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비근대적 수단으로 이룬 근대화

그렇대서 그의 말이 틀렸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결국 그는 대화와 상생의 이상을 가장 비(非)대화적으로, 비상생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행동이 모순되곤 있지만 그의 이상만은 옳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이상과 행동이, 목적과 수단이 어긋나는 모순을 우리는 종종 본다. 한 개인만이 아니라 한 정권, 또는 한 시대에 있어서도.

그 모순을 비교적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보기가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시대다. 많은 국민의 생각처럼 박정희는 이 나라 5000년 가난의 한을 씻고 전통적 농경사회를 최단기간에 근대적 산업사회로 탈바꿈시킨 지도자였다. ‘조국 근대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국민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킨 그의 업적을 부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대서 모든 국민이 마냥 박정희 시대를 찬양만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김형욱 이후락 차지철의 시대였고 중앙정보부 계엄령 긴급조치가 판을 친 유신 독재의 시대였다. 나는 박정희의 정책 업적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의 정책 수단도 시인할 수는 없다. 박정희를 회고하는 동시대인이 정신 병리학적으로 일종의 ‘스키처프레니아(분열증)’ 증후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는 조국 근대화의 목적을 비근대적 내지 반근대적 수단으로 성취한 시대였다.

모순의 감지가 용이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령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그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였고 그가 통치하던 ‘자유당 시대’는 대부분의 국민이 ‘못살겠다, 갈아 보자!’ 하던 시대였다. 이승만 시대란 자유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세상으로 기억되고 그는 독재자란 낙인이 찍혀 권좌에서 밀려났다.

그러한 이승만의 평가가 1989년 동유럽 소비에트 체제의 총체적 붕괴 이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변했다. 1945년 광복 후의 이른바 ‘해방 공간’에서 만일 이승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슬아슬한 가정을 해보면서…. 결국 이승만은 어려운 역경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 건국 목표를 비자유주의적, 비민주주의적 수단을 동원해 성취한 지도자였다.

정(正)의 목적을 부(負)의 수단으로 추구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부의 목적을 정의 수단으로 이룩한 모순의 경우―예컨대 쿠데타나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거라고 하는 비혁명적 방법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나선 체제 변혁, 체제 부정의 혁명적 목적을 수행하는 경우다. 그럴 때 사람들은 권력 장악의 온건한 손에 눈이 가려 권력자의 불온한 속을 들여다보지 못할 수가 있다. 비혁명적, 의회주의적 정치의 일상에 가려 그 속에서 진행되는 혁명적, 체제 부정적 변혁엔 눈 뜬 장님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화제와 문제를 쏟아 낸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를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어떨까. 그는 젊은 386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선에 이겨 집권했고 그의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대승해 의회를 장악했다. 이처럼 비혁명적,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혁명적, 체제 부정적 목표를 집요하게 추구했다.

386 혁명, 선거를 통한 체제 부정

전통적인 한미동맹과 대북 안보정책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현대사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 요컨대 기존 체제와 가치 체계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 부인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혁명적인 도전의 연속이었다. 다만 노 대통령의 집권과정이 비혁명적이어서 그의 혁명적 기도가 시야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노무현 시대가 서서히 그를 졸업하는 동시대인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대선에서 내가 던지는 한 표의 무게를, 그 무서움을 깨달아라! 지도자를 제대로 뽑아라! 실수는 순간, 후회는 꼬리가 길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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