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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0월 2일 2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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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해외 유학을 떠난 106만 명 가운데 귀국한 인재가 27만 명에 그치자 파격적 대우를 내세워 ‘귀국 공작’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 출신에게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지난해 발표된 ‘111계획’은 세계 100위권에 들어 있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1000명을 초빙해 중국 대학 안에 혁신기지로 선정된 100개 학과에 10명씩 배치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인재 전쟁의 ‘외톨이’
인도의 국력 상승은 해외에 있던 인재를 다시 불러 모은 데 따른 결실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두뇌유출지수에서 인도는 1996년 10점 만점에 3.07점에서 2006년 6.76점으로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수치가 10점에 가까울수록 두뇌 유출이 적다는 뜻이다. 같은 시기 국력도 동반 상승했다.
미국은 최고의 대학경쟁력에 힘입어 외국의 우수 두뇌가 등록금을 싸들고 공부하러 오는 ‘속 편한 나라’지만 외국인 두뇌의 모국행이 늘어나면서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중국과 인도 등의 인재가 고국에 돌아가면 미국의 경쟁력은 약화되는 반면 상대방은 그만큼 강해지는 이중의 손실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두뇌유출지수는 지난해 세계 40위(조사 대상 61개국)였다. 1995년 한국은 두뇌유출지수 7.53점으로 세계 4위에 오르며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에는 4.91점으로 떨어졌다. 10년 사이 두뇌가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에서 과학기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가운데 국내로 돌아온 사람은 2003년 919명을 정점으로 2004년 759명, 지난해 500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최근 서울대 공대의 교수 모집에서 적임자가 한 명도 없어 채용을 포기했던 것은 두뇌 유출의 부분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독일의 실패 사례는 인재 유출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독일은 20세기 전반기 세계 과학의 종주국이었다.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부터 1945년까지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39명이 나왔는데 독일은 25%에 해당하는 36명을 배출했다. 미국은 독일의 절반이 안 되는 17명에 그쳤던 시절이었다.
독일의 화려했던 위상은 최고의 과학자들이 20세기 중반 나치정권의 탄압을 피해 무더기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19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33년 미국에 망명한 것이 상징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과학의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독일은 패전 이후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냈으나 아직도 대표적인 인재 유출국이다. 해외 대학과 연구소에 나가 있는 독일 인재가 6000명에 이른다. 1970년 좌파가 벌인 문화혁명의 영향으로 초중고교의 ‘경쟁 없는 교육’이 장기간 계속되면서 미국 등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이 현재 6만 명이다.
두뇌 유출 부채질한 참여정부
아차 싶었던 독일은 2000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독일 청소년의 학력이 멕시코 수준의 하위권으로 나오자 경쟁교육 체제로 전환했다.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5개 우수 대학을 선정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우는 것이다. 거액의 집중투자로 교수와 학생 등 두뇌 유출의 물길을 되돌린다는 계획이다.
우리는 같은 시기에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평준화 체제를 공고히 하고 세칭 일류 대학을 철저히 통제해 경쟁력을 약화시켜 두뇌 유출을 부채질했다. 독일이 실패했던 길을 답습한 셈이다. 두뇌 유출의 결과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피해가 되어 나타날지 두렵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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