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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9월 2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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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최근의 잇단 영장 기각 재판은 어딘지 어색하고 개운치 않다. 그들 피의자들이 벌인 일련의 권력형 비리 행각이 가장 큰 국민의 관심사가 된 마당에 국민의 정서에 어긋나는 재판이라서만은 아니다. 국민이 많은 관심을 갖는 사건이고 국민의 정서가 구속수사를 기대한다고 해서 영장을 발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정서법’은 때로 실정법의 흠결을 보완하는 순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코 실정법에 우선할 수는 없다. 법치주의 정신에 반하기 때문이다.
잇단 구속영장 기각 개운치 않아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법원이 내세운 기각 사유도 원론적으로는 옳을 수 있다. 그러나 널리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이라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고 방어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판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사건 관련자인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비롯해 혐의를 부인한 유명인이 구속된 선례는 수없이 많다. 얼굴이 널리 알려졌는지가 구속 가부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법원의 생각처럼 무죄 추정 원칙과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 원칙은 사법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해야 한다. 법 적용의 평등은 법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유명도(有名度)나 대통령과의 관계, 권력과 돈의 많고 적음이 법 적용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구속 기준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다만 오늘의 시대정신이 권력형 부정부패의 척결을 통한 맑은 사회 풍토 조성에 있고 그것이 우리가 고대하는 선진국 진입의 지름길이라면 권력을 수단으로 행해지는 권력형 범죄와 비리에 대해서는 특별히 준엄한 법 적용이 마땅하다. 수사 단계에서부터 압수수색과 구속의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권력을 이용한 범죄자는 권력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증거인멸에도 능해서 증거인멸 내지 증거 조작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공직자에게 투철한 공직 사명을 요구한다. 공무원에게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 국민 전체에게 봉사하라고 명한다. 국회의원에게는 청렴 의무와 함께 지위를 이용한 재산상 권리 이익의 취득 내지 알선을 금지한다. 이 헌법상의 명령은 무죄 추정 원칙 내지 불구속 수사의 원칙에 결코 뒤지지 않는 헌법의 단호한 명령이다. 고위 공직자의 권력형 범죄와 비리를 특히 무겁게 처단해야 하는 헌법적인 근거이다.
신정아 씨의 여러 범죄 혐의가 대통령 측근 권력자 변양균 씨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가능해진 개연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두 사람에 대한 영장 기각 재판은 헌법의 명령을 제대로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정윤재 씨의 영장 기각도 마찬가지다. 사법부에 권력형 부정부패의 척결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헌법정신을 무시한 형식논리적인 기각 결정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불구속 수사’ 고집은 형식논리
검찰이 대통령 측근 부정 비리 사건의 수사를 머뭇거리고 부실한 구속영장 청구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법원이 헌법규범을 통일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무죄 추정 원칙 내지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라는 기능적인 부분만을 보고 함부로 영장 기각 재판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다.
힘없는 서민과 달리 권력형 부정부패 사범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징벌적 구속을 해서라도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단호하게 처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결코 법 적용의 불평등이 아니라, 헌법정신에 충실한 형평성에 맞는 법 적용이다. 법원은 재청구 영장심사에서 이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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