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동원]노동조합, 기로에 서다

  • 입력 2007년 9월 22일 02시 41분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 수준과 노조의 영향력이 최저 수준에 다다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시민들의 노사관계 인식을 물어 1989년 조사와 비교한 결과를 보면 ‘노조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고 믿는 응답자가 53%에서 16%로 줄었다. 근로자 요구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정당하다’는 의견이 67%에서 41.3%로 줄어든 반면 ‘과도하다’는 의견은 32.4%에서 57.1%로 급증했다. 또한 ‘어느 기관을 가장 신뢰하느냐’는 질문에서 노조는 5.4%로 시민단체, 언론, 종교단체, 정부, 기업에 이어 꼴찌였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도 2007년 현재 10.8%로 1989년의 19.8%의 절반에 불과하다.

노조 조직률 9년새 절반으로

민주화 바람을 타고 파업의 물결이 절정에 이르던 1989년 이후 노동조합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해 서민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막강한 힘을 얻었다. 이를 기반으로 노동조합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부분이 적지 않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상당수의 생산직 근로자가 중산층의 대열에 합류했다. 실질 임금의 증가와 중산층의 확충은 구매력을 향상시켜 내수경기를 이뤄 내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만년 세계 최악을 기록하던 산업재해도 다소나마 줄어들었고 세계 최장을 기록하던 근로시간이 감소 추세를 보인 것도 모두 노동조합의 강화된 협상력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노동조합의 영향 아래 근로자들의 인권이 현저히 향상됐다. 사용자들의 비합리적인 경영 관행과 횡포가 줄었고 사업장에서 성희롱과 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안도 도입되었다.

이런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 결과는 노조가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노조원의 기득권 보호에만 치중해 무리한 강경투쟁을 거듭한 결과다. 노조 간부의 잇단 비리와 노조대회장에서의 연이은 폭력사태, 대기업 노조의 취직 장사, 명분도 실리도 없이 반복되는 총파업은 노조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 평가를 부정적 평가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한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노사 간의 세력균형이 중요하다. 사용자가 너무 강하면 고용이 불안해지고 빈부격차가 심화돼 남미 국가들처럼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노조가 너무 강해지면 기득권만을 추구하여 영국병 같은 비효율성을 경험하게 된다. 노조에 대한 여론의 악화는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가속화함과 동시에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은 아니다. 노동조합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건전한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강경투쟁은 여론 외면 부를 뿐

우선 국민 여론을 중시하는 노동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고 파업을 연례행사처럼 하면서 하청기업의 근로자와 지역 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지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노동운동은 평조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의 동향이 중요하다. 여론을 무시하는 노동운동은 장기적으로 쇠락할 수밖에 없고 여론을 존중하는 노동운동만이 사회의 건전한 기관으로 존립할 수 있다.

또 취약계층을 돌보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노조원은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기득권 근로자가 절대 다수이다. 정규직의 노조조직률은 20%를 넘는 데 비해 전체 근로자의 4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의 조직률은 2∼3%에 불과하다. 노동운동의 순기능은 소외계층을 보호하는 데 있다. 노조가 현재처럼 기득권 계층을 대변하는 강경 투쟁만을 일삼는다면 사회적 고립이 가속화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한국 노동조합의 획기적 결단이 요구된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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