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손학규 씨, 웃고 있지만

  • 입력 2007년 7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며칠 전 손학규 씨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탈당 이유를 비교적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고 한반도 통일의 길을 만드는 것을 한나라당의 지금 후보는 잘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데, 한나라당은 나한테 기회를 안 주는데 어떡하나”라고. 단순화하면 ‘대통령이 되고 싶은데 한나라당에서는 후보로 뽑힐 가망성이 없어서’라는 얘기다.

그동안 손 씨는 다르게, 그리고 복잡하게 설명했다. “선진화의 꿈과 평화를 실현하려고 했는데 한나라당이 받아 주지 않았다”, “중도 통합을 통한 새 정치를 창조하겠다”는 등이었다. 그러면서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13년여 자신을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대선주자로 키워 준 당을 욕했다. 대다수 사람이 뻔하게 여기는 것을 손 씨만 다르게 말하니 사리에 맞지 않는 변명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쉽고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그리고 한나라당에 “미안하다”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보다는 공감하는 이가 많았을 것이고, 이후의 행보도 한결 자유로웠을 것이다.

안타까운 게 하나 더 있다. 한나라당이 자신에게 기회를 안 줬다고 원망하는 점이다. 자신은 당을 위해 할 만큼 했는데 당은 오히려 자신을 찬밥 신세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당이 ‘인물’을 몰라줬다는 푸념이지만 자신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이명박, 박근혜 씨만큼 나왔더라도 그런 말을 했을까. 기대만큼 인정받지 못한다면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노력 부족과 결함부터 되돌아봐야 하는 게 정치인의 바른 자세 아닐까.

손 씨는 지금 범여권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고수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캠프에 합류한 의원이 8명으로 늘었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청와대의 일부 참모까지 돕겠다고 나섰다. 현재 판세라면 신천지(新天地)를 찾아 나선 승부수가 적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대선주자의 지지율 조사에서는 여전히 한 자릿수(5∼8%)에 머물고 있다. 뭔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한나라당에 있을 때나 별 차이가 없다.

범여권에서 계속 1위를 유지할지도 미지수다. 지금은 ‘귀빈’ 대접을 받지만 본격적인 경선전이 시작되면 경쟁자들이 그를 곱게 놔둘 리 없다.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해찬 씨는 “나와는 살아 온 길이 다르다”고, 한명숙 씨는 “민주개혁세력의 정통성을 갖고 겨루려고 한다”고, 김두관 씨는 “범여권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슬슬 시비를 건다. 2002년 대선 때 이인제 씨도 처음엔 잘나갔다.

손 씨의 최대 약점은 역시 정체성 문제와 한나라당 탈당 전력(前歷)이다. 자신이 아무리 개혁 지향적이고, 민주화 투쟁 경력이 있다고 외쳐도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13년의 과거’를 지울 수는 없다. 싫다고 피해 갈 수 없고, 지우려고 애쓸수록 더욱 선명하게 부각될 것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민심대장정(7월 1∼16일)에 나선 것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한 고육책이 아닌지 모르겠다.

손 씨가 범여권에서 최후의 승자가 못 된다면 꿈만 날아가는 게 아니라 이력서까지 더럽히게 된다. 그리고 더는 갈 곳도 없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답답할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