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옥자]몸만들기의 허와 실

  • 입력 2007년 6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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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을 상대로 하는 옷가게에 살이 좀 쪘다 싶은 여자가 들어오면 점원들은 아예 상대를 안 해 준다고 한다. 맞는 옷도 없거니와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몸매 생각은 안 하고 옷만 탓하므로 피곤하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젊은 여성은 44사이즈 옷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가 영양실조에 걸리는가 하면 50대 중노인조차도 55사이즈 옷에 몸을 맞추려고 다이어트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몸만들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 사회 전체를 휩쓰는 유행이 되어 버렸다. 살찐 사람은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미장원과 이발소는 몸의 아름다움을 다듬는 곳으로 변했고 몸만들기를 위한 헬스클럽 피부관리실 성형외과 등 온갖 업소가 성업 중이다.

6·25전쟁 후 궁핍했던 시절에는 영양실조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가사 시간에도 사람에게 필요한 하루 열량과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이 관심사였다. 전통음식은 섬유질만 많아 영양가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비만 때문에 온 사회가 집단공포증에 시달릴 줄 누가 알았으랴?

남녀노소 불문 비만탈출 열풍

눈 코 입의 성형수술은 이제 아주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성형수술로 얼마나 예뻐졌느냐는 젊은 여성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젠 중년 여자들에게까지 성형수술은 물론이고 지방흡입 수술로 날씬한 몸매를 다듬는 일이 유행한다. 성형수술 중독증 환자까지 속출하여 후유증으로 풍선아줌마가 생겨나고 유방확대 수술로 목숨을 앗기는 사태가 발생해도 성형수술은 계속된다.

지인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비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60대 남성이 했던 이야기다. 살찌는 것이 두려워 안 먹고 버텼더니 몸은 살이 빠져서 좋은데 얼굴에 쪼글쪼글 주름살이 생기니까 아내가 싫어하더라는 말이다. 그리고 식사 때마다 더 맛있는 것을 많이 차려 와서 먹으라고 권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기계도 전기를 넣어야 일하고 자동차도 기름을 먹어야 달리는데 하물며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안 먹고 활동할 수 있느냐? 문제는 적당히 먹지 않고 과다하게 먹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나이에 따른 섭생이 중요하지 않으냐고도 했다.

얼마 전부터 이런 현상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나타나고 있다. 중년 부인을 위하여 88사이즈나 99사이즈 옷이 등장하고 말라깽이 모델이 거식증으로 죽어 나가자 디자이너들이 이제부터는 통통한 모델을 쓰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 운동이 얼마나 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시대와 가치관의 산물이다. 평화의 시대에는 통통한 미인이 각광 받았다. 우리 전통시대에는 보름달같이 둥그런 얼굴의 처녀가 맏며느릿감으로 꼽혔고 ‘부잣집 마나님 같다’는 말은 살집이 좀 있고 인심 좋은 중년 부인을 가리키는 수식어였다. 당나라 현종이 총애했다는 양귀비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통통녀’라고 할 수밖에 없다.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고 하여 키 큰 사람에 대한 인식도 별로 좋지 않았다.

같은 시대라도 백제 불상과 신라 불상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평화를 사랑하던 문화국가 백제의 불상은 몸이 비후해 보이고 얼굴은 둥글고 온화해 보인다. 서산 마애삼존불을 보면 금방 확인된다. 화랑도라는 청소년 전사를 키우며 삼국통일의 전의를 불태우던 신라의 불상은 날씬하며 고뇌에 차 보인다. 신라의 반가사유상이 그 징표이다.

굶지 말고 나이에 맞게 섭생을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투쟁의 시대이기에 기민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 날씬함이 최고의 미덕이 된 것도 같다. 그러나 굶어서 날씬해지려는 젊은 여성의 몸만들기 열풍은 허약체질로 이어져 불임 등 사회문제로까지 되어 가는 조짐이 짙다.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열심히 일해서 균형 잡힌 건강한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평화의 시대가 오고 서구문명권이 저물면 키 작아서 결혼 못하는 일도, 쌍꺼풀 수술이나 코 높이기 수술, 유방확대 수술도 없어질 것이니.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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