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민국 경찰 치욕의 날

  • 입력 2007년 5월 2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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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전직 경찰청장을 고문으로 둔 재벌의 로비 앞에서 허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의 자체 감찰조사 결과 서울경찰청은 한화그룹의 로비를 받고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벌인 의혹이 일부 드러났다. 로비 의혹의 중심인물로 의심받는 홍영기 서울경찰청장은 어제 수사 총괄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과연 홍 청장이 재벌 봐주기 수사의 핵심 인물인지, 감독 소홀 책임만 있는 것인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경찰은 홍 청장이 사건 발생 직후 한화그룹 고문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음성통화로 연락하고 직접 만난 사실까지 확인하고도 “한화 사건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김학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 광역수사대에서 남대문경찰서로 사건을 무리하게 이첩하는 과정에서 비위 사실이 발견돼 직위해제 및 중징계와 함께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직의 생리상 재벌 회장 봐주기를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의 단독 비위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 부장이 과연 누구의 지시 또는 묵인하에 대기업 회장 관련 중요 사건의 수사 주체를 바꾸었는지가 의혹을 푸는 핵심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홍 청장의 사퇴에 대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지만 검찰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혐의를 털어 주는 듯한 발언은 삼갔어야 한다. 검찰의 수사 대상에는 홍 청장이 이 청장에게 보고했는지, 이 청장이 보고받았다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

경찰은 3월 8일 발생한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을 같은 달 28일에야 남대문경찰서에 이첩했고, 언론에 보도되자 사건 발생 거의 한 달 후인 27일 전면수사에 착수하는 부산을 떨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수사에 석연치 않은 곡절이 숨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재벌기업에 취직한 전직 경찰 총수의 불법 로비에 한없이 비굴해진 경찰 조직에 애초부터 공명정대한 자체 감찰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였다.

경찰이 스스로 진실 규명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검찰에 관련 경찰 간부들의 수사를 의뢰한 이날은 대한민국 경찰에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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