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구자룡]원자바오와 여신 오카시오

  • 입력 2007년 4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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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전인 2002년 5월 칠레 취재를 갔을 때의 일이다. 칠레와의 FTA 협상이 진행되면서 국내 일부에서 반발이 거세져 상대국의 경쟁력을 현지에서 파악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뜸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이유인즉,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전쟁 뒤 얼마 되지 않아 ‘아시아의 4룡(龍)’으로 성장을 한 데에는 기술 선진국인 일본이 옆에 있는 것이 주요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의 뒤를 따른 ‘안항(雁行·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것) 성장론’까지 거론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한 듯했다. 그는 중국 경제가 급부상하면서 풍부한 노동력과 급속히 커 가는 시장을 제공해 한국 경제에 유리한 환경이라며 부러워했다.

칠레는 현재 세계 54개국과 FTA를 체결했다. 인구 약 1600만의 내수 시장만으로는 경제가 커갈 수 없어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린 그야말로 ‘FTA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리 같은 지하자원과 포도 포도주 홍어 등 고만고만한 상품을 생산하면서도 칠레는 FTA에 힘입어 남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꼽힌다. 넓어진 ‘FTA 시장’을 토대로 제조업 기반도 넓혀 가고 있다.

칠레가 중국 시장과 가깝다며 부러워한 한국이 올해 지정학적 이점을 더욱 살릴 기회를 맞았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올해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한중 교류의 해’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늘 방한한다. 12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폐막식을 할 때까지 올해는 어느 해보다 양국 간 교류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는 한 해가 될 수 있다.

원 총리는 방한에 앞서 지난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한중 FTA가 빨리 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미 FTA 협상 타결 뒤 협정 효과에 대한 논란이 높은 가운데 미국 못지않은 파급력이 예상되는 한중 FTA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과도 협상 전 단계인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는 앞머리가 길고 뒷머리는 대머리라고 한다. 앞머리가 많은 것은 그를 처음 본 사람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것은 지나쳤을 때 다시 잡을 수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그의 발에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은 빨리 지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기회를 뜻하는 영어 단어 ‘occasion’도 여신 오카시오에서 따왔다고 한다.(송승우, ‘이제는 블루오션이다’)

중국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이 칠레 경제인이 부러워하던 상황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리스 로마의 모든 신들도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졌다. 여신 오카시오를 알아보고 머리카락을 낚아채 큰 나라 사이에 낀 이점을 살릴지,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을지는 우리 하기 나름이다.

구자룡 국제부 차장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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