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연욱]靑대변인의 ‘비선 접촉’ 궤변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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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권 때도 다 비선(秘線) 접촉을 했다. 왜 참여정부에서만 이게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청와대 대변인인 윤승용 홍보수석비서관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의 대북 비밀접촉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같이 항변했다.

윤 수석의 발언은 공직이 없는 민간인인 안 씨가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이호남 참사를 접촉한 경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도중 나왔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이 되어도 물질적으로 돈을 주고 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비선 접촉이든 아니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 ‘이면거래’는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다. 안 씨의 비선 접촉이 물의를 일으킨 것은 그동안 청와대가 입이 닳게 강조해 온 ‘투명하고 공개적인 남북대화’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특히 안 씨의 대북 비선 접촉은 노 대통령이 정권 출범 초인 2003년 기존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의 대북 비밀송금에 관한 특검을 수용했던 것과도 맞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북한과의 대화는 공식 통로가 가장 정확하다. 그동안 비공식적 통로도 시도해 봤지만 성과가 없었다”며 비선 접촉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래놓고서 안 씨를 막후에서 북한과 접촉하게 했으니 ‘참여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다르다’고 차별성을 주장한 것이 모두 쇼였던 셈이다.

청와대가 지난해 11월 안 씨의 베이징 접촉 사실이 알려지자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가 지난달 말 본보 보도 이후 뒤늦게 대북 비밀접촉 사실을 시인한 것이 과연 과거 정권의 행태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국민은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정치지도자들의 궤변을 듣는 것에 신물이 난다. 대북 접촉의 특수한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상황이 다급하다고 해서 “남들도 그랬는데 왜 나보고만 뭐라 하느냐”고 우긴다면 딱한 일이다. “정도(正道)로 뚜벅뚜벅 간다”는 게 현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 아니었나. ‘얄팍한 글재주’ 운운하며 언론 탓을 할 일이 아니다.

정연욱 정치부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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