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 핑계 댄 정치사면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정부는 어제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을 앞두고 434명의 특별사면·복권 대상자를 발표했다. ‘경제 살리기’와 ‘묵은 갈등 치유’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오히려 정치적 계산과 복선이 깔린 ‘정치사면’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분신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DJ와 이들의 특수 관계로 볼 때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을 다시 짜려는 구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DJ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까지 사면된 것을 보면 옛 동교동계와의 화해를 통해 민주당, 곧 호남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놓으려는 것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중요한 시기에 이들을 한꺼번에 사면할 까닭이 없다.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해 경제인들을 사면한다고 하지만 핑계처럼 들린다.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 때는 열린우리당이 같은 이유로 건의한 경제인 사면을 ‘정권의 정체성’을 이유로 거부해 놓고 이제 와서 경제 살리기 운운하는 것도 이상하다. 정말 경제를 살리려면 시장주의에 역행하는 정책과 평등 코드부터 버려야 한다.

정권 출범 초기에 요란하게 비리 척결을 외치며 잡아들인 뒤 사면 복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법의 안정성과 법 집행의 실효성을 해치고 부패불감증만 키운다. 노 대통령부터가 지난 대선 때 “무분별한 사면을 하지 않을 것이고, 사면 기준도 엄격히 해 법 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법 대선자금으로 곤욕을 치르고서도 “정치권의 정치자금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수 있다”는 기업인이 48%나 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3권 분립의 정신과 사법부의 권위도 훼손하는 만큼 분명한 원칙과 국민적 공감대를 조건으로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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