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유엔도 한국 인재 뽑고 싶지만…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192개 회원국이 모여 있는 유엔은 ‘언어 백화점’이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복도를 걷다 보면 언어의 홍수 속에 있음을 실감한다.

이 때문에 유엔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러시아어를 유엔 공식 언어로 정해 공식 회의가 열리면 6개 언어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영어와 프랑스어는 ‘진골’ 대접을 받는다. 매일 유엔 공식 일정표가 두 가지 언어로 제공된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유엔에서조차 프랑스어는 ‘지는 언어’라는 점이다.

유엔에서 외교관들이 사적으로 만나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영어다. 프랑스 기자를 포함해 유엔에 출입하는 모든 취재진은 영어로 취재를 한다.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곳도 유엔이다. 유엔본부 사무국 직원들 중에는 영어를 잘하는 국가인 인도, 파키스탄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진해 있다. 그들을 바라보며 ‘만약 한국인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면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유엔본부에서 일하는 한 한국 외교관은 “유엔평화유지군만 해도 고위 직급에 한국 군인이 올 수 있는 자리가 많지만 응모를 해도 영어구사 능력이 부족해 면접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사실 한국인들은 여러 측면에서 업무수행 능력이 우수한 편이다. 은행 창구나 동사무소 등에서 받는 서비스도 우리는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외국에서는 어림도 없다. 한국의 은행 창구 직원들이 복잡한 계산을 전광석화처럼 재빨리 해내는 장면을 외국인들이 본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실제로 유엔본부 직원식당 계산대 업무는 언제부터인가 한인 교포 여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국제화 시대를 맞아 다양한 직종에서 해외로 진출할 기회가 많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영어 실력이다. 영어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의 영어 실력은 갈 길이 한참 멀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유엔에서 취재를 할 때 유럽 국가들, 특히 네덜란드 출신들이 영어를 탁월하게 잘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자회견장에서 네덜란드 출신 기자들이 영어를 영국인만큼이나 완벽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죽곤 했다.

실제로 얼마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들렀을 때도 택시 운전사, 호텔 직원 등 ‘전 국민’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택시 운전사에게 그 비결을 물어봤더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웠고, 외국 영화는 물론 만화영화도 자막을 아래쪽에 넣어 원어를 그대로 보면서 자랐다”고 대답했다.

자원이 부족한 네덜란드는 예전부터 무역을 통해 돈을 벌어 왔기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등 자국민의 언어구사 능력을 국력으로 간주해 특별 관리를 해 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영어 구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물론 영어만 잘한다고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어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영어구사 능력이 지금보다 나아진다면 개인은 물론 국가 경쟁력까지 높아질 것이다. 국가 차원의 영어 정책과 관련해 영어를 잘하는 국가로 분류되는 네덜란드, 싱가포르, 핀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영어학습 모델을 벤치마킹한 뒤 뭔가 근본적인 개선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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