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글로벌 ‘新 노사문화’가 한국에 주는 경고

  • 입력 2007년 2월 5일 03시 00분


지난해 12월 14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본사. 30유로(약 3만7500원)나 되는 입장료를 내면서도 유럽 최대 자동차 공장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 관계자들은 기자를 경계했다. 한 직원이 귀띔했다. “재판 탓에 언론에는 예민해서….”

당시 이 회사의 페터 하르츠 전 이사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임금 보전 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노사협상을 주도하며 노조 간부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협상안에 따라 대가 없이 일을 더 하게 된 노동자들에게 하르츠 전 이사는 관심 밖이었다.

공장 입구에서 만난 중년의 노동자는 “불만이죠. 하지만 공장의 해외 이전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같은 날 공장의 한 쪽을 차지한 폴크스바겐 자회사 ‘아우토5000’에서는 새 모델 생산을 논의하는 종업원 회의가 열렸다. 2001년 설립 당시 이 회사는 실업자만 고용했고, 노동자는 저임금과 탄력근로제를 받아들였다.

이날 폴크스바겐에는 세 가지 이슈가 뒤엉켜 있었다. 하르츠는 왜 노조에 뇌물까지 줘야했을까. 노동자들이 임금 보전을 고집할 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무얼까. 무엇이 ‘아우토5000’을 성공시켰을까.

이 뒤엉킴의 배경에는 노동시장의 세계화가 불러 온 고용위기가 깔려 있다. 기업은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와중에 다양한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과 인도가 세계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5%. 중국, 인도의 가세로 자본주의 시장의 노동자는 최근 10년 새 두 배로 늘었다. 이는 선진국 노동자 임금의 10∼20%만 받고도 일할 사람이 10억 명에 이른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영어 구사력과 기술까지 갖췄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베를린에서 열린 전국 노조대의원 대회에서 “노동시장의 국경이 없어진 탓에 임금을 더 올리기 어렵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은 기존 공업국 근로자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다. 선진공업국의 경우 기업도 노동자도 이제 임금이나 근로시간을 놓고 다툴 수 없게 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노사는 이제 뭘 주고받아야 할까.

미국 기업들은 최근 ‘인간 존중’ ‘안전’에 주목하고 있다. 회사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월 1000달러까지 주는 곳도 있다. 일터에서 존중받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경영 방안도 유행이다. 독일에서는 노사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서 근로자들이 임금 이외의 소득(자본 소득 등)을 축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2007년 글로벌 고용위기-신노사문화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위해 선진공업국의 안간힘을 취재하는 동안 끊임없이 떠오른 것은 파업에만 익숙한 한국의 모습이었다. 한국은 글로벌 노동시장의 ‘불편한 진실’에 대응할 어떤 새로운 노사관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이은우 사회부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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