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정호]고삐 풀린 도박유혹, 꽁꽁 묶인 투자의욕

  • 입력 2006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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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 환전 수수료를 제한 ‘바다이야기’의 승률은 93%. 100원을 넣으면 평균 93원을 딴다. 게임 수익률은 마이너스 7%. 밑지는 장사다. 도박에 빠지다 보면 직장도 가정도 제대로 꾸릴 수가 없게 되니, 진정한 수익률은 마이너스 50%는 너끈히 될 것이다. 그래서 도박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망치고 가정을 망친다. 그 수가 늘면 나라를 망칠 수 있다. 동네마다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이 바다이야기에 빠져 든 것은 위험한 조짐이다.

물론 진정한 자유 사회는 자신을 망치는 자유까지 허용한다. 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무위도식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담배를 피우는 것도, 도박으로 돈을 날리는 것도 모두 자유다. 그런 자유에도 불구하고 국민 각자가 절제된 삶을 살도록 사회 기풍을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능력이다.

또 도박의 유혹이 없는 곳에서 살아갈 자유 또한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자기 동네에 도박장이 들어서지 않게 할 권리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바다이야기 사건은 서툰 규제 완화의 표본이다. 어느 정도 도박을 허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아무 곳에나 도박장을 만들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왜 강원 정선군에만 강원랜드를 만들도록 허용했나?

바다이야기와는 달리 꼭 해야 할 도박이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반도체 투자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잘못되면 삼성그룹 전체가 날아갈 판이었다. 이제 그것은 삼성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조선과 자동차 투자,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전자산업 투자,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이동통신 투자가 모두 도박이었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기업가의 투자가 도박인 것은 실패와 부도의 가능성 때문이다. 성공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지만 실패하면 모든 것을 날리게 된다. 기업의 도박은 성공했을 때 일자리가 생기고, 싸고 좋은 제품이 생산돼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면에서 바다이야기와 다르다. 바다이야기 도박은 하면 할수록 삶이 황폐해지지만 기업가의 투자는 많아질수록 사람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실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기업가는 과감하게 투자를 해 줘야 한다.

불행히도 서민의 투전 놀이는 독버섯처럼 번창하는 반면 기업가의 투자는 사그라졌다. 투자를 안 해서 회사 내에 현금이 쌓여 가고, 새로 주식을 발행해서 투자자금을 마련해도 시원찮은 판에 자사주를 매입해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있다.

기업가가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많다. 투자가 수익을 내기 시작할 5, 6년 후에 이 나라의 시장경제 체제가 온전할지 불안해한다.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줄지 불안하다. 전투 능력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맞서 시장경제를 지킬 의지가 있는지 믿기 어렵다고 한다.

소송도 마음에 걸려 한다. 수익률 높은 투자는 실패 확률이 높기 마련인데, 실패하고 나면 대표소송이니 집단소송이니 해서 소송당하기 십상이다. 운이 없으면 개인적으로 배상해야 한다. 성공에 대한 대가는 지분만큼이고 실패에 대한 책임은 그 이상이니 과감하게 투자하지 않는다.

그나마 투자하고 싶은 데가 있어도 수도권 규제와 출자총액제한 같은 것이 막는다. 수도권 규제를 풀려니 지방정부가 들고일어나서 반대하고, 출총제를 풀려고 하니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금지를 들고 나온다. 지난 수십 년간 대기업의 새로운 투자는 대부분 순환출자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생각할 때 순환출자를 금지한다면 출총제를 풀어도 투자는 늘지 않을 것이다.

순환출자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지 대상이 돼야 할 만큼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모습이 무엇이든 투자를 해서 성공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싸고 좋은 제품이 생산되며 소득도 높아진다. 자주국방이니 복지국가니 해서 써야 할 돈의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서민의 도박하고픈 마음은 줄여 주고, 기업가의 투자 의욕은 높이는 게 임박한 파탄을 막아 내는 길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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