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음악 20년 끝은 어딘지”

  • 입력 2006년 8월 3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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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장 속 음악가, 벽을 뛰쳐나오다

지독한 남자라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지난 21년간 음악 아니면 안 되는 운명을 스스로 선택했던 이 남자.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 ‘붉은 노을’ ‘옛 사랑’ 등 1980∼90년대 가수 이문세의 히트곡을 잇달아 낳은 작곡가 겸 작사가 이영훈(46).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그뿐이었다. 사람들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에게서 쾌쾌한 ‘예술가 냄새’를 맡아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28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그에게서 쾌쾌한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깊게 팬 얼굴 주름이 부드러운 인상을 더해줄 뿐. 첫 마디부터 쓴소리가 나왔다.

“몇 년 만에 하는 인터뷰인지 모르겠네요. 그간 내 노래를 불러줄 가수가 없어 5년 동안 공백기를 가졌으니. 갈수록 오락성에 치중하는 가요계가 스스로 창피할 정도예요. 난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시인으로 남고 싶어요. 가난하지만 시를 썼다는 것만으로 예술가적 칭송을 받는 존재 있죠.”

그의 음악생활 20주년을 기념해 다음 달 14일 발매하는 앨범 ‘옛 사랑’ 자체가 요즘 가요계에 던지는 쓴소리일지도 모른다. 이 앨범에서는 정훈희 전인권 같은 선배가수부터 이승철 임재범 박선주 등 동년배, 그리고 ‘신화’의 신혜성, 윤도현, ‘클래지콰이’를 비롯한 후배 가수 등 모두 17팀이 참여해 그가 만든 이문세의 히트곡 13곡을 새롭게 부른다.

“10년 전 주변에서 ‘10주년 앨범 안 내느냐’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과연 내가 기념 음반을 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어요. 내 이름 앞에 작곡가 작사가란 수식어를 붙이기 창피했을 정도였죠. 이제야 좀 어울리는 것 같아요.”

# 오래된 음악가의 20주년

겸손한듯 들렸지만 20주년 기념 앨범은 2년 전부터 계획됐다. 앨범 부제인 ‘더 스토리 오브 뮤지션’에 걸맞게 노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수들을 모으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

이승철이 부른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부터 신혜성의 ‘시를 위한 시’, 하우스 음악으로 편곡된 ‘클래지콰이’의 ‘애수’, 재즈가수 나윤선이 부른 ‘기억의 초상’ 등은 원곡과 또 다른 맛을 담고 있다. 윤도현 전인권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록 발라드풍으로 변화를 주었다.

“이문세 씨를 위해 만든 곡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김현식 인순이 선배를 염두에 둔 록발라드와 솔풍의 노래도 많았어요. 이번 앨범에서는 본래 의도를 살리고 싶었답니다. 다만 17팀이나 참여하는 관계로 스케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죠. 17장의 앨범을 만든 기분이랄까요.”

이 음반이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소비하는 10대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의문이다. 그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진작가에게 중요한 건 유행이 아니라 사물을 사물답게 촬영하는 능력입니다. 이수영 조성모 ‘신화’ 등 후배 가수들이 내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것도 세대를 관통하는 진실성 덕분 아닐까요?”

그는 내년 1월 김건모 윤건 전인권과 힙합 듀오 ‘리쌍’이 참여한 ‘옛 사랑’ 2집을 발매할 예정이다. 그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광화문 연가’도 기획 중이다. 지지직거리는 LP의 추억은 이제 사라졌지만 진실성 하나 믿고 덤비는 그의 장인 정신은 여전하다.

“가수가 500번 이상 노래를 불러 음반을 내던 시대는 지나갔죠. 하지만 아직도 제 노래 중에는 10년 넘는 시간을 두고 뜯어 고친 작품이 많아요. 그런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나도 가끔 궁금해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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