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월드]근시안적 신문법 논의

  • 입력 2006년 7월 1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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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킨 위대한 발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다. 유럽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본을 인쇄했던 한국인들은 이런 평가에 속이 편하지 않다.

요즘은 간혹 한국의 금속활자를 인정해 주는 서구인들이 있어 나은 편이다. 인쇄 기술의 문명사적 의미를 연구하는 서구 학자들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고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고려가 아니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라는 점이다.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동식 활자라는 기술적 장점과 제지나 잉크 등 연관 기술 수준의 차이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중요한 기술외적 요인이 있었다.

15세기 후반 유럽의 인쇄업자들은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적 벤처기업가라고 할 만했다. 신기술을 가진 이들은 시장을 분석하고 투자자를 모아 사업을 벌였다. 구텐베르크도 이런 사업가였다.

이에 반해 13세기 고려의 인쇄업은 국가 독점 사업이었다. 인쇄 목적도 고려의 경우 정치적 종교적이었지만 유럽은 상업적이었다. 유럽에서 인쇄술은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는데, 인쇄소가 있는 도시는 대부분 상업의 중심지였다. 인쇄 내용도 고상하고 격조 높은 것뿐만 아니라 지도나 가이드북 등 판매를 목적으로 한 것들이 많았다.

시장을 둘러싼 사업자 간의 경쟁도 치열했다. 구텐베르크도 파산할 정도였다. 이런 생존 경쟁과 그에 따른 기술 혁신이 유럽의 인쇄술을 고려의 그것과 다르게 한 것이다.

우리는 고려 금속활자를 개발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며 단지 고려의 기술로 기억한다. 하지만 구텐베르크 인쇄술에는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담겨 있다. 그 결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인류 문명사의 전환점이 되었고, 고려의 인쇄술은 200년을 기다려 구텐베르크에게 영향을 준 것에 머물러야 했다.

이 사례는 정당하고 옳은 것을 추구한다는 국가가 오히려 이기적인 개인보다 더 공익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문제는 방법이다. 통신 방송 융합이나 신문법 관련 논의를 보면 공익에 대해 근시안적 강박관념을 드러내는 이가 많다. 고려 금속활자의 초라한 자리가 옛날이야기로만 생각되지 않는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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