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사일 구경꾼’ 노무현 정부…대북지원 전면 재검토해야

  • 입력 2006년 7월 6일 1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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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대포동2호를 비롯해 모두 7기의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두 달 가까이 끌어 오던 ‘미사일 위기’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이번 사태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對北)정책과 위기관리 시스템에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발사 움직임이 처음 포착됐을 때부터 미국과 일본이 단호한 태도를 보인 데 비해 노 정부는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사일인지 위성발사체인지 정확히 모른다” “북은 장사정포가 따로 있으니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북이 미사일을 쏜 뒤에야 정부 관계자들은 “우리도 이번 주 초부터 징후를 포착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일이 터지고 나면 시력이 2.0이나 되는 듯이 말한다’는 서양 속담을 듣는 기분이다. 미리 알았다면 왜 일본처럼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는가. 일본 정부는 북한이 첫 미사일을 발사한 지 20여 분 만인 오전 3시 52분 긴급경계령을 내리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보고했다. 이어 오전 6시 17분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앞에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국민은 일본 NHK 등 외신을 인용한 보도를 통해 북의 미사일 발사 사실을 알게 됐다. 노 대통령이 북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보고받은 것은 오전 5시경이고, 정부가 기자회견을 통해 성명을 발표한 것은 오전 10시 10분경이다. 성명이래야 ‘심각한 유감 표명’ 수준으로 ‘즉각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미일 정부와 역시 대조적이다. 일본이 총리 주재 안전보장회의를 연 것은 오전 7시 30분인데 노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린 것은 오전 11시였다. 이 회의에서 나온 대응 방향도 ‘북을 압박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다분히 한가한 내용이었다.

정부는 북한 미사일에 관한 모든 정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한미공조를 고장 냄으로써 정보 부재(不在)를 심화시켰다. ‘동북아 균형자’를 자처하며 ‘자주국방’을 외치고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를 주장한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일본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하지 않아도 될 강경 발언을 일삼아 감정의 골만 깊게 했으니 한미일 공조를 어떻게 회복해 북의 위협에 공동 대처할지, 국민은 불안하다. 그렇다고 중국에 매달릴 것인가.

정부는 ‘통일비용’ ‘민족공조’ 운운하며 북에 대한 퍼주기 지원을 계속해 왔다. 그동안 쌀과 비료 지원에 쓴 국민 세금만도 1조7019억 원에 이른다. 올해도 35만 t의 비료 지원을 약속했다. 노 대통령부터 “북에 물질적, 제도적으로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고 앞장섰다. 그 대가가 미사일 발사다. 이제 우리는 대북 지원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은 북이 그동안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5∼10개의 핵폭탄을 이미 만들었고, 미사일 개발 수준은 세계 6위권이라고 평가한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계속 두고 볼 것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생각을 바꿀 것인지 택일해야 한다. 북이 지금보다 더 많은 핵과 미사일을 갖게 된다면 그때는 통제 불능의 상황이 되고 만다.

우리 사회의 맹목적인 ‘민족끼리’ 주창자들에게도 묻는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 통일축전을 열고 자주와 반미를 외쳐 온 당신들에게 북은 미사일로 답했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노 대통령부터 입장을 밝혀야 한다. 왜 미사일 문제에 대해선 침묵하는가. 정부 관계자들은 “대북문제에 대통령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고 했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이 정말로 나설 일과 나서지 않을 일을 제대로 가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번에야말로 노 대통령은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체제 위기 자초하는 김정일 정권

북한이 국제사회의 만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은 ‘구제받기 어려운 집단’임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주민들을 굶어죽게 하면서 핵과 미사일 도박으로 세계적 지역적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김정일 정권은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국제사회로부터 요구받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엔이 어떤 형태의 제재 조치를 취하든 전적으로 북한 정권이 자초한 일이다.

북이 미국의 독립기념일(현지 시간 4일)을 미사일 발사시점으로 잡은 것은 긴장을 극대화함으로써 미국을 북-미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대해 입장 차이를 보여 온 미일과 한국 사이를 더 갈라놓으려는 잔꾀도 읽힌다. 어차피 위조달러 문제로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고 있어서 또 한번 ‘깽판’을 쳐봐야 더 잃을 게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벼랑 끝 전술이 언제까지나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1994년 미국과 맺은 제네바 기본합의를 어기고 핵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겠다던 미국 및 일본과의 합의도 보란 듯이 깼으니 미일인들 다시 유화책을 쓰기가 쉽겠는가. 미국의 여론부터 급변하고 있다. ‘북은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집단’이라는 강경론이 급속히 확산돼 ‘대화를 통한 해결론’을 압도하고 있다.

미사일이 떨어진 해상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일본의 분노는 더하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미사일까지 쏘자 일본 측은 즉각 대북(對北) 초강경 제재와 자위(自衛)조치를 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의 미사일 발사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더할 나위 없는 핑계가 될 것이다. 결국 북이 중-일의 군비증강 경쟁을 부채질해 동북아의 현상유지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북의 이번 미사일 도발은 같은 민족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이 갖고 있는 연민마저도 깨 버리고 말았다. 북은 그동안 “미국의 공격 위협에 맞서 자위 차원에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주장해 왔지만 거짓이다. 북은 1970년대 후반 이후 경제력에서 남한에 뒤지기 시작하자 개혁·개방·민주화로 활로를 찾으려 하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주된 타깃은 ‘같은 민족의 나라’ 한국이다.

작년 김 국방위원장은 “미국과 수교하고 우방이 된다면 미사일을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 전에도 보상을 전제로 미사일 포기 가능성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바뀐 주장이다. 대량살상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면서 체제 보장과 보상을 요구하는 북에 진정성이 있다고 국제사회가 믿을 것 같은가. 김정일 체제는 생존과 자멸의 갈림길로 스스로 다가서고 있다. 미사일 발사는 결코 살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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