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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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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이 영화가 “엎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 등 젊은 영화인들이 “한국 영화계가 임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를 이렇게 대접할 수는 없다”며 나섰다. 안성기 최민식 등 배우들은 “무료 단역 출연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신생 영화사인 ‘KINO2’가 ‘천년학’을 창립 작품으로 정했고, 창업투자회사인 센츄리온기술투자가 투자자로 나섰다. 영화진흥위원회 또한 영화 제작을 위한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성원도 이어졌다. 전남 장흥군 광양시 진도군 등이 야외 세트를 건립했고, 영광(靈光) 정(丁)씨 학교(鶴橋) 문중에서는 종중회의를 거쳐 집성촌인 장흥군 관산읍에 있는 소나무(수령 200년 추정)를 세트장이 있는 인근 회진포로 옮겨 영화 촬영을 도왔다. 또 코닥이 촬영에 소요되는 필름 전량을 반액으로 할인해 주겠다고 약정했다. 판소리 명창들과 궁중음식 전문가 한복려 씨, 한복 연구가 김혜순 씨도 십시일반 힘을 보태기로 했다.
힘을 얻은 제작진은 3월 11일 장흥에서 크랭크인 했다. 매화가 절정인 광양시 매실마을에서 일주일에 걸쳐 봄 장면을 촬영한 제작진은 최근 진도군 관매도와 해남군 대흥사 경내의 유서 깊은 전통여관인 유선관(遊仙館)에서 보름간 여름 장면을 촬영했다.
‘서편제’ 당시 영화 담당 기자를 한 인연으로 최근 먼 길을 달려 유선관을 찾아갔다. ‘서편제’ 때 어린 송화와 동호가 소리와 북을 연습하던 느티나무가 변함없이 의젓한 자태로 맞아 준다. 촬영장에는 의욕과 열의가 넘쳤고 날씨까지 협조적이었다.
눈먼 송화를 소실로 맞아 애지중지하는 백사(白砂) 노인의 칠순잔치를 찍고 있던 임 감독은 “서편제는 판소리 자체를 영상으로 보여 준 ‘소리 영화’였지만, 천년학은 소리를 매개로 이복 오누이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멜로 영화’”라고 말했다. 그는 제작 중단 당시의 충격을 떠올리며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라 참담한 심경이었으나 생각보다 빨리 제작사가 나타나고 많은 사람이 돕겠다며 나서는 것을 보고 내가 영화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테가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임 감독과 일생의 콤비인 정일성 촬영감독도 “우리 두 사람의 연륜과 실험정신이 동시에 드러나는 ‘한국적 명품’을 만들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원작자 이청준 씨는 매번 촬영 현장을 지키며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래서 작가 집안의 중시조 어른과 부인의 호(號)가 약간씩 바뀌어 영화 속 인물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원작자로서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만족하며, 영상 언어의 권리는 당연히 감독에게 있다”고 말했다. 눈물겨운 다이어트로 10kg을 감량한 오정해와 이 작품을 자신의 연기 인생의 승부처로 생각한다는 조재현의 열의 또한 각별하다. 소리꾼 아버지 역은 김명곤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입각하는 바람에 임진택이 맡게 됐다.
제작자인 KINO2 김종원 대표는 “올해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거쳐 내년 4, 5월에 개봉할 예정”이라며 “순제작비로 38억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지만 감독님 덕에 받은 물적 지원을 합치면 실제 순제작비가 50억 원대에 이른다”고 말했다. ‘서편제’가 대박을 터뜨릴 당시 명창 김소희 선생은 “억울하게 살다간 모든 소리꾼의 영혼이 이 영화를 돕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천년학’ 또한 그러리라고 확신한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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