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남경현]‘페트병 너구리’ 구조작전

  • 입력 2006년 4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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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작은 사랑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야생 너구리를 살려 냈다.

14일 오전 경기 군포시 금정동 군포시청 뒤 야산에서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경기남부지회 회원 5명은 머리에 페트병을 뒤집어쓴 너구리 한 마리를 생포했다.

목에 피멍이 들고 상처까지 입은 너구리는 곧바로 경기 수원의 한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안산의 야생동물 임시보호소로 옮겨졌다.

야생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은 “10일가량 아무것도 먹지 못해 탈진한 상태”라며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태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이 너구리의 안타까운 사연과 사진이 알려진 지 5일 만의 일이다.

ID가 ‘깊은 발목’인 한 누리꾼이 풀꽃 사진을 찍으러 집 뒷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이 너구리를 발견한 것은 9일 오후.

이 누리꾼은 평소 산책길에서 가끔 보던 너구리가 머리에 페트병을 끼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이를 빼주려고 다가갔다. 하지만 너구리는 그대로 달아났고 이 누리꾼은 즉시 군포시청 당직실과 동물병원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119구조대까지 출동했다. 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이 누리꾼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 너구리의 사진과 사연을 올렸다. 관심은 뜨거웠다. ‘너구리를 살려야 한다’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군포 주민들 사이에도 이 소식이 퍼져 나갔다.

너구리가 살고 있는 곳은 테니스장과 배드민턴장이 있어 매일 수백 명의 시민이 찾는 반경 4km의 야산. 주민들 사이에서는 너구리의 안부를 묻는 것이 인사가 됐다. 군포시청 직원들과 해병전우회 등도 한마음으로 나섰지만 워낙 발이 빨라 찾아내도 번번이 생포에 실패했다.

이날 구조된 너구리는 1년 6개월 정도 된 어미 너구리다. 가정을 이뤄 새끼 2, 3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일주일 뒤면 어미 너구리는 새끼들 곁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너구리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누리꾼들과 주민들은 “한시름 놓았다. 다시 너구리 가족들을 볼 수 있겠다”며 크게 반겼다.

ID가 ‘퍼스 앤젤’이라는 누리꾼의 댓글이 인상적이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우리 도시인인 듯하다. 너구리 찾기를 통해 이웃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했다.” 군포에서

남경현 사회부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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