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군대 안의 동성애

  • 입력 2006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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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뒤인 1993년‘ 7월 고심 끝에 군대 내 동성애자들에 대한 새 관리지침을 내놓았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하지 않는 한 문제 삼지 않되, 사실이 드러날 경우엔 종전처럼 강제로 전역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당초 군의 동성애 금지규정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공약했던 그가 이처럼 어정쩡한 절충안을 내놓은 것은 여론 때문이었다. 당시 미 의회엔 동성애자의 군 복무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의 전화가 사상 최다인 40만 통이나 접수됐다.

▷우리 군도 이 문제로 시끄럽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그제 국회에서 군대 내 동성애자를 처벌하거나 강제 전역하도록 하는 군형법 제92조와 군인사법 시행규칙의 폐지나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반대 여론이 들끓자 백지화했다. 국방부는 어제 “병영 내 모든 성적(性的)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까지 했다. 하지만 천금보다 무거워야 할 국방 수장(首長)의 경솔한 발언으로 군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병영 내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묵인할 경우 군의 기강과 사기가 저해될 가능성이 높다. 동성애자끼리 노골적으로 성행위나 애정 표현을 할 경우 부대의 단합과 전투력이 유지되겠는가. 엉뚱한 ‘치정(癡情) 사고’가 빈발할 수도 있고, 동성애 상급자가 계급을 내세워 하급자를 성추행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강 해이로 총기 사고가 잦은 판이다.

▷요즘 국방부는 군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익은 ‘인권정책’들을 쏟아 내고 있다. 사병들의 ‘부대 재배치 청구권’을 법제화하겠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자신의 근무부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힘들고 위험한 전방으로 가겠다는 병사가 얼마나 있을까. 군마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지면 안보는 누가 책임지나. 시중에 “군이 군기가 빠져도 너무 빠졌다”는 얘기가 나도는 사실을 윤 장관은 아는지 궁금하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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