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중매를 서겠다고?” 개인정보유출 심각

  • 입력 2006년 2월 24일 15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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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3개월의 주부 최연희(가명) 씨는 얼마 전 자신의 남편을 찾는 전화를 받고 심장이 멎을 뻔했다. “(남편) C씨의 중매를 서겠다”는 전화였다. A결혼정보회사 매니저라는 그 사람은 “마침 C씨에게 잘 어울리는 참한 여자가 있어 꼭 맞선을 주선하고 싶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겨우 놀란 가슴을 추스린 최 씨는 “연락처와 이름은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최씨의 남편이 나온) D대학 동창회에서 동창 명부를 팔 길래 그걸 입수해 연락했다”는 것.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남편의 회사로도 같은 전화가 수차례 걸려 왔었다.

최 씨는 “이미 결혼해 분가한 사람의 집이나 회사로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작위로 전화를 해댔다”며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하다지만 출신 대학 동창회까지 아무렇지 않게 졸업생의 정보를 팔다니 너무나도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K대학을 나온 30대 회사원 윤주호(가명)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윤 씨는 “대학 동창회 명부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고 하더라”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전화번호나 주소까지 아는 걸로 봐선 나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정보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걱정했다.

A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동창회가 기업체에 명부를 파는 걸 여태 몰랐느냐”고 반문한 뒤 “명부(권당 정가 8만원 가량)를 팔아 운영비로 쓴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동창회 명부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음만 먹으면 전국 모든 대학교의 명부를 다 구할 수 있지만, 영업상 상위 레벨 학교 위주로 갖고 있다”며 “사법·행정고시 합격생군, 의사군, 세무·회계사군 등 전통적인 인기직종 종사자들의 명단도 연줄을 통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기분 나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신고를 하기도 하지만 벌금 한번 내 본적이 없다”며 “고소해도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고 말했다.

D대학 총동창회 관계자는 “동창 명부를 졸업생들에게 판매한 적은 있어도 마케팅 회사에 팔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졸업생 확인절차’를 묻는 기자에게 “구입을 원하는 졸업생에게 이름과 졸업년도, 학과 정도를 묻는다. 사실 동창회를 속이면서 사려고 한다면 막을 방법은 없다. 다른 동창회도 비슷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 큰 문제로 비화된 적은 없다. 요새 불만을 말씀하시는 동창들이 있어 판매 경로를 알아보겠지만, 동창회 명부 판매를 아예 그만둘 수는 없다”며 “솔직히 졸업생이 13만 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다 단속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경근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동창회 명부는 동창들끼리만 공유해야지 일반 공개 대상이 아니다”며 “동문 간 연락용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명부 속 모든 사람들에게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그러나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이에 대한 동의 절차나 방법 규정이 없어, 신고 땐 관할청에서 주의를 주는 정도밖에는 제재수단이 없다”며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의 경우 인터넷상에서의 보호는 잘돼 있지만, 오프라인은 뚫린 부분이 많다. 오프라인까지 규제하는 정보보호법이 국회에 상정돼 있지만 관할기관 문제를 두고 3년간 표류 중”이라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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