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일왕 代잇기

  • 입력 2006년 2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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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에 41년째 아들이 태어나지 않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965년 둘째 왕자가 태어난 이래 손자 대(代)까지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 왕위는 남자만 계승하도록 해 놓은 것이 왕실 전범(典範)이다. 헌법에는 남녀평등이지만 ‘거룩한’ 왕실에서는 남녀차별인 것이다. 아무튼 며느리들이 끝내 사내를 낳지 못한다면 왕통 계승이 문제가 된다.

▷오늘날의 왕국 21개국 가운데 여자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나라가 절반이 넘는다. 일본 네팔 말레이시아 등과 아프리카의 왕국이 남계(男系)를 고집할 뿐이다. 유럽의 영국 스페인 등은 ‘남자 우선이지만 여자도 된다’는 것이고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남녀 불문하고 ‘첫째’가 우선이다. 일본의 각계 원로들이 머리를 맞대고 결국 ‘손녀라도 계승하게 하자’고 가닥을 잡아 갔다. 왕실 전범이 국회 과반수의 찬성으로 고쳐지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자 우익들의 반발이 일었다.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자랑하는 125대 왕통을 남자가 이어 왔는데 대를 끊겠다는 거냐”고 저항한다. “과거 여왕이 8명 나왔다지만 후계자가 클 때까지 한시적이었고 왕통은 남계로 되돌아갔다”는 주장이다. 극우파는 “현재의 손녀(4)가 한국의 ‘이 씨’와 결혼할 경우 일본은 무혈 점령당한다”고 선동까지 한다. 그 이면에는 우익의 정신적 거점인 ‘천황제’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국회의 보수파 의원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그래서 우파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고이즈미 정권’이라도 개정을 관철하기 어렵다고들 했다. 그런데 돌연 둘째 왕자의 비(妃)가 임신한 사실이 확인되고 9, 10월경 출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만일 아들을 낳는다면 왕위 계승 최우선 순위가 된다. 비록 4순위지만 남계로는 1순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왕실 전범 개정은 더욱 어렵게 돼 버렸다. 과연 모리 요시로 전 총리의 말마따나 ‘신(神)의 나라’ 일본인가. 그 정치도 ‘신계(神界)’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고 종잡을 수 없는 구석이 있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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