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연세대 松島 캠퍼스가 돋보이는 이유

  • 입력 2006년 2월 8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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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게이오대의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는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면 나온다. 게이오대가 보유한 5개 캠퍼스 중 하나인 이곳은 대학 개혁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게이오대는 1990년 이곳 10만 평의 땅에 새 캠퍼스를 조성해 문을 열었다. 교육내용도 ‘21세기형 대학’을 내걸고 기존의 대학교육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 틀을 짰다. 21세기를 살아가려면 어떤 지식과 소양이 요구되는지를 미리 내다보고 커리큘럼을 만든 것이다.

전공 분야는 종합정책학부와 환경정보학부 두 개로 나뉘어 있지만 각각 문과와 이과를 대표할 뿐이며 학생들은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공부한다. 21세기의 문제는 여러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폭넓은 지식과 종합적 사고(思考)가 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이 캠퍼스는 ‘학(學)’자가 들어가는 과목은 모두 강의에서 배제했다. 사회에 나가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지식만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게이오대가 1990년대 이후 일본 사립대의 선두 자리를 확고히 한 것은 이 캠퍼스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강력한 개혁 이미지 덕분이었다.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준비된 신입사원’을 원했던 기업들은 크게 환영했다. 일본의 다른 사립대들은 이 캠퍼스를 개혁 모델로 삼아 쫓아가기 바빴다.

연세대가 송도국제도시에 새 캠퍼스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당분간 대학사회의 뜨거운 관심사가 될 것이다. 명문대가 기존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하게 밖으로 뛰쳐나가 혁신에 뛰어든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찍부터 개혁을 모색해 온 선진국 대학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결단은 ‘무늬만 개혁’에 머물러 온 한국 대학들의 혁신 경쟁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대학 개혁은 사립대에서 주도했다. 사립대 쪽이 관료주의적인 국립대에 비해 외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실제로 개혁의 성과를 거둔 대학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계 원로로서 대학을 비판한 책 ‘학문의 조건’을 펴낸 정범모 교수는 그 원인으로 대학의 팽창주의를 지적했다. 시대적 수요에 부응한다며 신설하는 학과는 있어도 폐지되는 학과는 없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그런 수술을 감행할 지혜나 용기가 처음부터 없고 그것을 책무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책임도 크다. 정부가 대학을 끝없이 규제 대상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지만 ‘국가의 생명줄’이라는 대학을 육성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건 더 심각하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3년간 교육 분야에서 한 일을 꼽는다면 대학입시 제도를 바꾼 것과 ‘서울대와의 전면전’, 그리고 사립학교법 개정 정도였다.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데 앞장섰을 뿐 세계적인 대학을 키우는 일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학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 중대한 시기를 허송한 것이다.

그래도 사립대들은 어떤 식으로든 개혁에 나설 것이다. 대학 진학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연세대의 과감한 결단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에 비해 국립대 쪽의 개혁은 멀기만 하다. 총장 직선제를 고수하며 과열 선거와 논공행상에 매달리는가 하면 ‘백화점식 경영’에다 한번 교수가 되면 자리가 보장되는 느슨한 체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국립대가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건 국가가 운영비 전액을 대기 때문이다. 국립대의 위상은 아직 사립대보다 우위에 있다. 지방 사립대는 학생이 모자라 쩔쩔매지만 국립대는 다르다. 교육예산을 독점하면서 현실적으로 대학 경쟁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립대의 무사안일은 비극이다. 새로운 도전의 길을 택한 연세대는 국립대와 비교할 때 더 돋보인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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