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밴댕이의 ‘자뻑’

  • 입력 2006년 1월 18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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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을 수행하면서 중간매개(媒介)를 거치지 않고 의사를 국민에게 직접 전달하는 수단을 갖고 싶어 했다. 국가 비상사태에 국민에게 곧바로 호소하고 싶은 것은 국가 최고지도자들의 공통 심리라고 볼 수도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펴면서 라디오를 통해 ‘노변정담(爐邊情談)’을 시작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부터는 NBC의 한 네트워크를 빌려 정부 발표를 국민에게 바로 전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권력자의 애완견이 아니라 감시견(監視犬)이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기본적 접근법은 비판적 회의주의(懷疑主義)이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제도적으로 확립된 나라의 지도자들도 자신의 메시지가 언론인의 해석과 논평을 통해 전달되는 것에 간혹 불만을 품게 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노변정담’에서 대통령의 말을 해설하는 언론인들을 ‘타이프라이터 전략가’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집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를 고안해 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자면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형식이 호소력이 높으리라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공중파 TV 3사는 ‘국민과의 대화’를 생중계했다. 그러나 나라경제가 위기에서 탈출하고 ‘국민과의 대화’가 두 번째, 세 번째로 늘어나면서 대통령의 공중파 독점을 비판하는 여론이 제기됐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일 일본과 전쟁을 하는 데 라디오를 동원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 전쟁을 하는 데 인터넷을 들고 나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비서관과 행정관들은 너도 나도 칼럼 코너를 꾸리고 있다. ‘백년대계’ ‘이심전심’ ‘여론읽기’ ‘호시우행’ ‘시시비비’…. 문패는 다채로운데, 내용은 ‘노 대통령이 잘하고 있고, 정부 비판은 부당하다’는 천편일률의 ‘자뻑(자기한테 뻑 가기) 칼럼’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와 ‘국정 브리핑’만으로는 모자란다고 여겼던지 주요 포털 사이트에 ‘대통령의 요즘 생각’이라는 블로그가 개설됐다.

메이저 신문의 영향력을 감퇴시키고 국민과 바로 상대하려는 노 대통령의 시도는 집요하지만 여론 지지도가 보여 주듯이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이 정부 언론정책은 대통령의 말을 해석하고 논평하는 저널리스트의 역할까지 청와대에서 맡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어긋났다. 인터넷에서 대통령의 말과 글을 읽은 누리꾼일수록 저널리스트의 해석과 논평을 찾아 읽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석연 변호사는 비판 언론에 대한 이 정권의 속 좁은 대응을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논평했다. 비판 언론을 못 견뎌 하는 정도가 독재정권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 언론과는 인터뷰도 안 하고, 비판 언론에 기고를 한 공직자에게 경고를 하는 판이다. 평소 ‘범생이’ 같아 보이던 천정배 법무부 장관까지 막말을 하고 나섰다. 천 장관은 “×도 모르는 ×× 네 놈이 신문을 돌아가며 상고(商高) 나온 대통령을 놀린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요즘 미국 신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없으면 어떻게 사설과 칼럼을 쓸까 싶을 정도다. ‘부시 때리기’가 지면에 넘쳐난다. 부시 대통령이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는데도 ‘더미(바보)’라고 놀린다. 언론 자유를 구가하는 나라에서 최고 권력자는 학벌에 관계없이 사설, 칼럼, 만평의 단골 소재다.

참여정부가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려면 ‘자뻑’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와 비판 세력을 끌어안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통령과 비서들이 하루에 몇 시간씩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댓글을 주고받는 ‘자뻑’은 자위(自慰)가 될지는 몰라도 국민을 설득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뻑’이라는 속어 표현이 마음에 걸리지만 법무부 장관이 ‘×도 모르는 ××’라는 언사를 하는 마당에 크게 잘못될 일은 없을 것 같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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