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법치(法治)

  • 입력 2006년 1월 2일 03시 00분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은 한비자(韓非子)의 법술론(法術論)을 채택해 중원을 통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은 백성이 따라야 할 절대적인 규율이고 ‘술’은 법을 운용하는 방법, 즉 권모술수를 말한다. ‘술’은 군주가 가슴에 품고 신하를 제어하는 기술로, 남에게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도 했다. 법치 하면 으레 한비자를 떠올리지만, 실은 제왕(帝王)통치의 방편을 제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요즘 얘기하는 법치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의 법치는 집권자의 자의적 지배를 경계하는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오직 법에 의해서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정치원리다. 멀리 보면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대혁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법치의 이상(理想)을 읽을 수 있다. 나라의 기본 규범을 정하고 이를 통해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생각은 서구사회에서 발전해 온 법치주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법치주의 확립’을 새해 화두(話頭)로 던졌다. 입법부 수장인 그의 법치 해석은 간명하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표결을 하고 이에 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관용과 상생의 국회를 만들기 위해 벽돌 한 장부터 다시 쌓는 심정으로 올해를 시작하자는 말도 했다. 연말 파행 국회에 대한 반성보다는 책임 회피로 들린다. 국회가 ‘통법부(通法府)’로 통했던 시절의 다수결 논리를 다시 듣는 것 같다.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김 의장의 논리라면, 작년 말 여당이 사실상 단독 국회를 열어 예산안과 각종 법안을 처리한 것도 법치의 실현이란 얘기가 된다. 물론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지만 그것이 법치일 수는 없다. 법을 만들면서 거기에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담았는지 헤아려 볼 일이다. 새해에는 타협과 양보로 혼란과 불안을 극복하는 ‘아름다운 정치’를 보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법치가 아니겠는가.

송 대 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