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93>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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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만약 너까지 유방에게 빼앗겼다면 항양(項襄)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조구(曹咎)조차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희(虞姬)를 자신의 여자로 만든 지는 벌써 3년이 되어가고 후궁(後宮)으로 들여 미인(美人)에 봉한 지도 2년이 넘었지만, 패왕은 아직도 우희의 맑고 그윽한 두 눈과 마주치면 함양 궁궐에서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있었다. 패왕의 목소리를 떨리게 한 것도 바로 그런 가슴 두근거림이었다.

벌써 여러 날 패왕과 함께 밤을 보내고도 만날 때마다 처음 만난 듯하기는 우희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듯 몸을 맡기고 있던 잠자리는 이제 뜨겁게 마주 안는 사이로 변했지만, 다른 곳에서 만나면 패왕은 여전히 낯설고도 위태로운 힘과 열정의 추상일 뿐이었다. 따라서 어쩌다 패왕과 눈길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잠자리에서 숨 막힐 듯 끌어안아 올 때와 달리 우희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먼저 움츠러들기부터 했다.

“신첩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발그레해진 아미를 숙인 우 미인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받았다. 듣고 있는 패왕의 얼굴도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정인(情人)을 마주 보고 있는 사람처럼 불그레했다.

하지만 패왕과 우 미인이 처음 만난 때부터 그때까지를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와 같은 그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녀로 만난 지 3년이라지만 한 지붕 아래 머물면서 정분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패왕이 처음 팽성에 도읍을 정하고 개선한 뒤의 몇 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패왕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기 시작한 첫해의 분주함 사이사이에 불어간 봄바람일 뿐이었다.

이듬해 정월 패왕은 전영(田榮)을 치러 제나라에 가 있고 우 미인은 팽성에 남겨졌다. 그러다가 4월에 팽성이 한왕 유방에게 떨어지자, 겨우 거기서 몸을 빼낸 그녀는 그 열흘 뒤 5월에 들어서야 산동(山東)의 진중에서 패왕을 만나게 된다. 날수를 헤아려 보면 패왕과 우 미인이 함께 지낸 날보다는 떨어져 있으면서 그리워한 날이 더 많았다.

그 뒤 패왕은 지켜야 할 가까운 사람과 재물을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움직이게 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진채 안에 둘 수는 없었다. 패왕의 본대가 진채를 벌인 곳에서 가까운 성읍을 골라 그 안에 두고 돌보게 하였는데, 그때 가장 소중하게 돌보아야 할 사람이 우 미인이었다. 그러나 멀리 팽성에 있을 때보다 좀 더 패왕과 가까이 있게 되었다는 것뿐, 여자로서 패왕과 함께할 수 있는 밤은 많지 않았다. 갈수록 늘어나는 전선과 그만큼 분주해지는 패왕 때문이었다.

전횡(田橫)이 아직 제나라 성양(城陽)에서 버티고 있고, 한왕 유방이 팽성을 함락해 패왕의 위신에 크게 흠집을 내기는 했으나, 그때가지만 해도 싸움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패왕이었다. 제나라 전토를 짓밟고 전영을 죽인 뒤에도 전군을 무사히 빼내 돌아왔고, 자신은 그중에서 뽑은 3만 정병으로 한왕 유방의 56만 군사를 쳐부수어 그들의 시체로 두 번이나 강물을 막았다. 따라서 그 뒤로도 패왕의 군사적 자부심과 자신감은 부풀기만 했다. 거기다가 또한 갈수록 심해지는 완벽 지향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믿지 못하게 해 패왕을 누구보다 바쁘고 고단한 장수로 만들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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