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수]출산 늘리려 세금 또 늘리나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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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당시 잘나가던 유명 운동선수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의 정책 홍보 포스터에 가족과 함께 등장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선수의 자녀가 세 명으로 늘자 그는 포스터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한때 우리 귀에 익숙했던 산아 제한이니 가족계획이니 하는 말들이 이제는 호공(虎公)의 끽연담(喫煙談)처럼 들릴 정도로 세상은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이른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21세기적 악재를 겪고 있으며,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회 경제 복지 등 모든 분야에 드리워져 있다. 사실 참여정부뿐만 아니라 이후 정권을 담당하게 될 어떤 정부도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 및 사회 양극화에 따르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필요한 종합대책을 마련 중이다. 정부의 ‘저출산·사회안전망 개혁 방안 소요 예산 확정 및 재원 확보 방안’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안전망 확충과 저출산 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내년부터 2009년까지 모두 23조2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 4조3000억 원과 지방자치단체 3조8000억 원을 합해 총 8조 원가량을 조달할 방안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저출산과 사회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고 그에 따르는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응당 필요한 일이다. 다만 정책 당국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려하고 있는 방법이 합리적이고 정당한지, 이러한 방안이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은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채 발행, 목적세로서 출산장려세 도입, 일부 세목의 세율 인상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한 재원 조달 방안이 아니다. 조세 저항도 예상된다.

우선 이러한 대책들은 ‘많이 거둬서 많이 나누어 준다’는 참여정부의 재정철학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방식은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생산적 복지를 실현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채 발행도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올해 국가 부채가 250조 원에 이르고 국민 1인당 국가 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500만 원을 넘어섰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소주세 등 일부 세목의 세율 인상도 침체된 내수경기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목적세의 신설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목적세라는 것이 원래 독립된 과세 대상 없이 이 세금 저 세금에 언저리세로 걷는 것이어서 납세자를 무시한 행정편의주의적인 세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저출산 대책 재원을 소규모로 편성해서 천천히 늘려 나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현대의 선진국가에서 대부분의 정책 수행 행위는 도약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이다. 정부는 불요불급한 국책사업을 조정하고 현행 세법에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는 비과세와 감면 조항을 정권의 명운을 걸고 과감하게 손질해 국민에게 추가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복지예산을 증액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50조 원을 넘어 수년 내에 70조 원에 이르게 될 복지예산의 효과와 전달 체계의 생산성을 엄정히 평가해 국민의 혈세가 새고 있지 않은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사회복지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해야 하며, 비효율적으로 운용될 경우 만인에게 고통을 주는 제도로 변질될 수 있음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성수 한국재정법포럼 부의장 한양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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