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9년 北 정성옥 세계선수권 마라톤 우승

  • 입력 2005년 9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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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미국 영국 일본 한국 북한 선수가 뛰었다. 미국은 나이키, 영국은 미치코 런던, 일본은 아식스, 한국은 프로스펙스 신발을 신었다. 반면 북한은 검정 고무신.

결과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북한의 우승으로 끝났다. 깜짝 놀라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북한 선수가 한 말. “내래 창피해서 빨리 뛰었시오.”

웃자고 만든 말이지만 실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물론 당연히 ‘고무신 기적’은 아니지만….

1999년 9월 29일 제7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스페인 세비야. 772번을 단 북한의 무명 선수가 세계 최고의 건각들을 따돌리고 2시간 26분 59초의 기록으로 여자 마라톤을 제패하는 쾌거를 이뤘다.

마라톤에선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세계선수권. 남북을 통틀어 첫 우승이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 마라톤에 대해선 잘 몰랐던 세계 스포츠계는 일제히 환호와 감탄을 쏟아냈다.

우리 입장에서도 7년 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스페인의 폭염을 뚫고 몬주익의 언덕을 맨 먼저 달렸던 감격에 비해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졸지에 세계 육상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정성옥은 기자회견에서 ‘고무신 우스개’에 견줄 만한 흥미로운 우승 소감을 밝혔다.

“나는 우리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달렸다. 이것이 나를 크게 고무했으며 내 힘의 원천이 됐다.”

북한은 이런 정성옥에게 인민 체육인은 물론 공화국 영웅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북한에서 체육 스타가 노력 영웅이 아닌 공화국 영웅이 된 것은 여태 그가 유일하다. 이는 16세의 나이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제패한 유도의 계순희나 1992년 바르셀로나부터 레슬링 올림픽 2연패를 이룬 김일도 누리지 못한 영광이었다.

정성옥은 2001년 3월에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동료 마라토너 김중원과 결혼했다. 김중원은 1998년 베이징과 1999년 마카오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북한 남자 마라톤의 간판.

정성옥은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면서 달변을 자랑하는 마라톤 해설가로, 신문과 잡지에 시를 기고하는 시인으로 활약하는 등 다양한 재능을 뽐내고 있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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