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러시아까지 北에 경수로 먼저 줄 수 없다는데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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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타결 다음 날인 20일 북한이 발표한 담화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 북은 “(먼저) 경수로 제공 없이 우리의 핵 억지력 포기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하루 전의 공동성명에 찬물을 끼얹듯 선언했다. 그러자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의 하나인 무디스는 21일 “경수로를 먼저 받아야겠다는 북의 요구는 6자회담 합의를 흔드는 것이므로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을 검토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선(先) 핵 포기, 후(後) 경수로 제공’을 고집한다면 핵 문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북의 주장은 추후 협상의 기선(機先)을 잡겠다는 의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일본만이 아니라 러시아까지도 이런 북에 동조하지 않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는 “국제 규정상 경수로를 먼저 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역사적으로 북의 맹방이요 후견자라고 할 러시아가 일언지하에 내치는 근거는 분명하다. 북의 요구는 1974년 미국 러시아 프랑스의 주도로 출범한 핵공급국그룹(NSG)의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자력 관련 기술 통제 등을 위해 명문화된 이 규정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원자력 기술과 부품 등을 줄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북한은 공동성명의 이행 여부를 지켜보는 국제사회의 눈을 두려워해야 한다. 생떼와 트집, 어깃장과 벼랑 끝 전술로 ‘폭리 횡재’만을 노려서는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 체제의 연착륙을 꾀하기도 어렵다. 한국과 중국을 지렛대 삼아 미국을 움직인 북이 ‘경수로 먼저’만을 우기는 것은 한국에 대한 배신이요, 국제사회의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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