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드라마 ‘올인’ 실제인물 차민수씨

  • 입력 200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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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수씨. 박영대 기자
차민수씨. 박영대 기자
《“월급 받고 일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가 준 명함에는 ‘한국관광공사 카지노회사 상임이사 차민수(車敏洙)’라고 적혀 있었다. 차 씨는 1996, 9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프로 포커계에서 최고의 수입을 올렸던 포커 플레이어. 일반인에겐 드라마 ‘올인’의 실제 인물로, 바둑 팬들에겐 프로기사 4단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그가 월급쟁이로서 맡은 일은 내년 1월 27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과 부산 롯데호텔에서 문을 여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영업과 객장 관리 업무.》

“1997년 이후 프로 포커계의 정규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면서 하루 3∼5시간만 일을 했는데 지금은 14시간씩 일하고 있습니다. 객장 설계, 딜러 교육뿐 아니라 평생 해보지 않은 서류를 검토하고 결재하려니 힘드네요.”

올해 쉰네 살이지만 얼굴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평생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온 때문일까.

“연봉이나 근무 시간만 보면 여기 올 이유가 없죠. 제가 1986년부터 1997년까지 포커 판에서 벌어들인 돈이 250억 원입니다. 번 만큼 쓴 돈도 많아 재산은 많이 못 모았지요.(웃음) 지금도 매년 10억 원은 벌 수 있는데 이곳 연봉은 1억 원이 채 안 됩니다.”

극소수의 프로 갬블러만이 이만한 돈을 만질 수 있다. 바둑으로 치자면 그는 이창호 이세돌 9단과 동급인 셈. 그럼에도 그가 국내 카지노 업체를 선택한 것은 제대로 된, 라스베이거스에 버금가는 카지노를 만들어 성공시키고 싶다는 의욕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카지노 매출이 5억 달러(약 5000억 원)라면 이건 모두 국내에 남는 돈입니다. 100억 달러 수출 효과와 비슷하죠. 또 객장 2군데에 필요한 최소 인원만 2500명이니까 고용 창출 효과도 적지 않습니다.”

관광공사가 예상하는 카지노 회사의 흑자 분기점은 2008년. 현재 연 68만 명 규모인 카지노 관광객이 매년 5∼10% 증가한다는 추정 아래 잡은 수치다. 그러나 차 씨는 6개월 안에 흑자가 나고 첫해의 관광객도 150만∼20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6개월도 좀 여유 있게 잡은 거죠. 제대로 된 카지노라면 개장 하루 만에 흑자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라지 호텔 카지노도 문을 연 지 하루 만에 흑자를 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영업 판촉 등이 잘못된 겁니다. 내년 초 카지노 개장 때 일본에서 카지노 관광객을 실은 전세기가 뜨고 객장 밖엔 입장을 대기하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더는 영업 비밀이니까 말씀드릴 수 없고….”

라스베이거스의 고수였던 그는 서울에서 유일한 쉐라톤워커힐호텔 카지노와 경쟁을 통한 서비스 개선을 약속했다.

“카지노는 전형적인 서비스업인데 국내 카지노 서비스는 크게 미흡합니다. 어느 카지노에서 직접 목격했는데 중국인이 제법 돈을 따자 여자 딜러가 한국말로 욕을 하더군요. 중국인이 알아듣지 못했으니 망정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돈 따는 딜러가 있으면 잃는 딜러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지노의 모든 게임의 룰은 확률상 2∼3% 카지노에 유리하게 돼 있다. 장기적으론 어차피 카지노가 돈을 벌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카지노의 서비스는 돈 잃어도 기분 나쁘지 않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따면 또다시 오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그는 서울 영등포구 경원극장 주인의 아들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프로기사로 입단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사고뭉치였던 그를 1976년 미국으로 쫓아내다시피 보낸 뒤 한때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 좌절에 빠져 마약에 손을 댔고 이혼과 자살을 기도하는 시련도 겪었다. 수중에 단돈 18달러만 남아 거지처럼 살아도 봤다. 그때 포커를 배우기 시작했고 두둑한 배짱과 타고난 승부근성으로 3년 만에 정상급 기량을 갖추게 됐다.

“갬블러는 전문 직업입니다. 남을 속이는 노름꾼과는 다르고 아무나 뛰어들 수 있는 세계도 아닙니다. 프로 갬블러의 세계는 프로 바둑계와 마찬가지로 실력 99%, 운 1%가 좌우합니다.”

그는 확실히 승부를 가리는 게임에 재주가 남다르다. 모든 사람의 재능이 똑같지 않기에 자기 재능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것을 나눠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는 어린이보호재단을 통해 결식아동 1200명에게 급식비를 지원하고, 모교인 용산고와 몇몇 대학에 장학금을 주고 있다. 1년에 6000만 원 정도 기부금을 낸다.

“2년 정도 되면 카지노가 제 궤도에 오를 겁니다. 그럼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가야죠.”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차민수 이사는

△1951년 서울 출생

△1976년 동국대 경제학과 3년 마치고 도미

△1985년 포커계 입문

△1989, 90년 후지쓰배 세계바둑대회에서 8강 진출

△1996, 97년 미 라스베이거스 프로 포커계 수입 1위 기록

△2005년 한국관광공사 카지노 회사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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