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받을 건 다 받고 南韓 길들이려는 北韓

  • 입력 2005년 9월 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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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근 행태는 남북관계를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끌고 갈 것인지, 새삼 회의에 빠지게 한다. 남한에서 받을 것은 다 받으면서도 핵 문제를 비롯한 현안에는 어떤 진정성도 보여 주지 않고 오히려 남한 내부문제에 사사건건 간섭하려 드니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만만해 보이게 됐는가.

북한은 그제 한미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을 비난하면서 남한을 ‘배신자’라고 했다. “그동안 남측의 요청을 다 받아 주었는데도 남측이 북침 전쟁연습으로 우리의 성의를 짓밟았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8·15 축전 대표단 파견은 북측이 통일전선운동을 위해 내심 원해서 보낸 것이고, 이산가족 상봉은 연례적으로 해오던 행사다. 이마저도 남측이 식량 50만 t과 비료 20만 t을 주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가능했겠는가.

북은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도 입북심사 때 핸드백을 열어보게 하는 등 전례 없이 모독에 가까운 홀대를 했다고 한다. 치졸하기 짝이 없다. 대북(對北) 사업 담당자 한 사람 물러나게 했다고 어느 나라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응할까.

북은 또 관영매체를 동원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정계복귀 불가론’을 펼치고, ‘6·25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친미·보수 세력에 의한 중상모략의 희생자”라고 두둔하면서 “남조선 인민들은 저지 투쟁에 나서라”라고 선동하고 있다. 제 앞가림도 못해 수십만 주민을 굶어 죽게 한 정권이 이 무슨 주제넘은 내정간섭인가.

북에 줄 것 다 주고서도 매번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자초한 면도 있다. 국무총리가 “인공기 소각을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김정일 정권이 대북 원조식량의 25∼30%를 빼돌리고 있다는 미 북한인권위원회(UCHRNK) 보고서가 나와도 북에 항의 한마디 못하니 북이 우리를 어렵게 알겠는가. 우리 사회의 이 위선(僞善)의 고리를 먼저 끊어 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영원히 북에 의해 길들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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