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호섭]‘고이즈미의 칼’ 누굴 울릴까

  • 입력 2005년 8월 15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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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의 역대 총리는 정치 행태를 기준으로 ‘화합형’ 총리와 ‘주도형’ 총리로 나눌 수 있다. 화합형 총리는 파벌로 나누어져 있는 자민당 내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법안이 중요할수록 다수결로 처리하기보다는 사전조정(네마와시)을 통해서 의견을 모으려고 노력한다. 정책이 결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정계, 관료, 재계의 의견이 모두 반영되기 때문에 일단 결정되면 확고하게 추진된다. 화합형은 일본의 전통적 리더십 모델로 평가되며, 안정된 경제성장 시기에 깊이 뿌리를 내린 리더십 형태이다.

반면 주도형 총리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특정한 정치적 명분을 내걸고 정치의 선두에 서서, 정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국가를 일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한다. 다나카 전 총리는 ‘일본열도 개조’, 나카소네 전 총리는 ‘불침 항공모함’을 주장한 바 있다. 정국을 강력하게 주도하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적 반대가 결집되기 쉽다. 이러한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주도형 총리가 동원하는 정치적 자원은 파벌 수장으로서 자기 계파에 속해 있는 국회의원의 수와 정치자금이다. 이 때문에 주도형 총리일수록 정치자금에 대한 부패 스캔들이 많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정국 주도형 총리다. 지금까지의 주도형 총리와 다른 점은 파벌 수장이 아니며, 정치자금도 크게 동원하지 않는다는 것. 개혁을 내걸고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여 국민의 지지도가 높다는 것이 고이즈미 총리의 가장 큰 정치적 자원이다. 총리에 선출된 것도 파벌 수장들의 협의에서 지명된 것이 아니고, 평당원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포퓰리즘적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사업 민영화라는 개혁 정책을 정국 주도의 축으로 삼고 중의원을 해산했다. 일본의 우정사업을 우편, 저축, 보험, 창구네트워크로 구성되는 4개 사업으로 분리하여 모두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민영화하면 우선 공무원의 수를 줄일 수 있으며, 우편저축과 우편보험이 보유한 350조 엔에 이르는 자금을 수익성을 고려하여 민간사업에 투자할 수 있어 경제적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350조 엔은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총액의 4분의 1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은 수익보다는 공익을 고려해야 하며, 개혁이 너무 성급하고, 민영화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 중의원에서 통과된 우정법안은 이 때문에 참의원에서 자민당 일부와 야당의 역풍을 맞아 부결됐다.

이에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법안에 반대한 자민당 의원을 ‘개혁의 적’이라고 규정하고, 공천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신예 정치가를 대항마로서 표적 공천을 추진하고 있다. 탈당할 수밖에 없게 된 법안 반대 의원들은 “자민당의 분열을 조장하며, 정적을 말살하는 정치수법은 지금까지의 총리에게서는 예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중의원 해산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지지도가 10%포인트 가깝게 상승한 것으로 일관되게 나타났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경제불황과 정체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우유부단한 자민당식 화합정치에 싫증이 난 일반 국민은 그의 과감한 정치행태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고이즈미 총리가 9월 11일 총선에서 성공할지는 정국을 지속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현재 방송과 신문은 그의 공천 내용과 새로운 정치 행태를 뉴스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수법은 뉴스거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주고 있다. 반면 개혁정책 혹은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야당이나 반대파의 문제제기는 큰 뉴스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투표일까지 지속된다면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한 달가량의 기간 중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달라진다면 그의 승부사적 정치수법은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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