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갚은 어느 칠순 노인의 수술비

  • 입력 2005년 8월 9일 1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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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수술비를 이제야 보냅니다. 용서하세요.’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적십자병원(원장 김한선) 앞으로 한 통의 편지와 500만원권 자기앞 수표가 동봉된 등기우편물이 도착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당시 20세의 청년이었던 A씨는 급성 충수염(맹장염)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역 인근 병원을 찾았으나 수술비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제 때 충수염 수술을 받지 못해 복막염으로 번지며 생명까지 위협받던 A씨는 주위의 소개로 무작정 서울적십자병원을 찾았다.

A씨는 형과 함께 적십자사 병원 앞에서 살려달라고 울며 애원했고, 보다 못한 여의사는 “젊은 사람은 살려야지, 내가 책임 지겠다”며 여의치 않은 병실 상황에도 불구하고 호의를 베풀어 수술을 받게 해주었다.

10일간 입원한 A씨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퇴원하고자 했으나 결국 구하지 못하고 야반도주를 하게 됐다. 그리고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칠순 노인이 된 A씨.

당뇨와 고혈압, 동맥경화 등으로 고생하면서 생을 뒤돌아보게 됐고, 50년간 가슴을 짓눌러왔던 병원비를 갚기로 결심했다.

A씨는 “50년 동안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병원비를 갚으려고 합니다. 500만원을 동봉하오니 원장님께서 받으시고 저를 용서하면 저는 편안한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편지 전문.

원장님께.

원장님께 용서를 빕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지금 저의 나이가 70세인데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내가 20세 때 배가 아파 동네병원에 갔더니 맹장이라고 의사선생님이 빨리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해서 그때 서울역에 ○○병원이 있어 그곳에 갔더니 현재 맹장에서 복막염이 됐으니 빨리 수술해야 하는데 수술비를 갖고 왔느냐고 하길래 돈이 없다고 했는데 돈이 없으면 수술할 수 없다고 가라고 하길래 우리 형님이 애원했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고 거절당해 할 수 없이 밖에서 울고 있으니 어떤 아주머니가 서대문에 가면 국가에서 경영하는 적십자병원에 가서 사정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걸어서 적십자병원에 들어가 내과에 가니 맹장을 지나 복막염이니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하길래 돈도 없고 수술비를 마련해서 갖고 올 테니 수술만 우선 해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 때 내과의사가 여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가 6. 25사변으로 예산이 부족도 부족이고 병실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희들이 울며 사정을 했더니 젊은 사람 살려야지 내가 책임을 질테니 수술하겠다 하여 수술을 받았습니다.

저는 10일간 입원했습니다. 상처도 아물고 병원에서 퇴원해도 된다고 하면서 병원비는 지불하고 퇴원하라고 하길래 형님이 여러 사람들 한테 돈을 구하려 해도 구하지 못해 제가 밤에 병원 뒷문을 통해 나왔습니다.

그 동안 50년 동안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지금 저는 당뇨와 고혈압, 동맥경화, 전립선 비대증, 발기부전증이 두루 합병으로 치료하고 있습니다만 이제는 생애 대한 애착심이 없어져 생을 마감하기 전에 개인적이고 사회에 누가 있는 것을 정리하고자 그 때 50년 전 적십자병원 입원비를 갚으려고 합니다.

자기앞 수표 500만원을 동봉하오니 원장님께서 받으시고 저를 용서를 하면 저는 편안한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원장님의 용서를 빌며.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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