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46>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5월 1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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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이윽고 원병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경포의 매복을 벗어난 패왕의 후군이 골짜기를 나왔다. 헤아려 보니 적지 않은 군사가 다치고 치중도 태반이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적은 어디 있느냐?”

패왕이 분노를 참지 못해 씨근거리며 그렇게 묻자 그곳 지리를 잘 아는 이졸(吏卒)하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읍으로 빠지는 샛길로 사라졌으니, 아마도 하읍으로 갔을 것입니다.”

“좋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서 하읍으로 가자. 내 반드시 경포를 사로잡아 그 가죽을 벗겨놓으리라!”

패왕이 부드득 이를 갈며 그렇게 소리치고 군사를 휘몰아 하읍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실로 분통 터지는 일은 경포가 하읍 성안으로 들지 않은 것이었다. 불같이 성문을 깨고 들어가 보니, 성문을 닫아건 것은 성안 백성들이었다. 유민군(流民軍)이나 초적(草賊)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그리 했을 뿐이었다.

“경포는 어디로 갔느냐? 어서 경포를 찾아라!”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눈으로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장졸들이 저마다 흩어져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돌아와 말했다.

“구강군(九江軍)은 하읍으로 들지 않고 바로 망산(邙山)과 탕산(탕山) 사이에 숨어버렸다고 합니다.”

망산과 탕산 사이가 숲이 짙고 지형이 험준하다는 것은 패왕도 들어 알고 있었다. 아무리 대군을 몰고 가도 그 산속 깊숙이 처박히면 잡을 길이 없었다. 한왕 유방도 한때는 그곳에 숨어 진나라의 엄한 법을 피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 바람에 당장 경포를 사로잡아 분을 풀 수 없게 된 패왕이 부글거리는 속을 억누르며 내뱉었다.

“왕좌에 앉아도 도둑 떼의 우두머리는 어쩔 수가 없구나. 싸우지도 않고 산속에 숨어버릴 바에야 무엇 때문에 군사를 몰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그리고는 처음 범증과 나눈 논의도 잊고 다시 망산과 탕산 사이로 달려갈 듯 군사들을 몰아댔다. 그때 범증이 가만히 항우를 말렸다.

“망산과 탕산에서 경포를 잡으려 해서는 아니 됩니다. 경포는 늙은 범과도 같아서 그를 잡자면 적지 않은 군사가 상해야 하는데, 이제 그걸 피할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됐습니다. 망산과 탕산을 칠 것처럼 하시되 사방 길을 막지는 마십시오. 그럼 경포는 며칠 안으로 망산과 탕산을 빠져 나가 구강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건 또 어찌하여 그렇소?”

“경포가 성을 버리고 산속으로 숨었다는 것은 그만큼 대왕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거기다가 근거지인 구강에 우리 초나라 군사가 이르렀단 말을 들으면, 처자와 재물을 모두 구강 왕궁에 두고 온 경포는 더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망산과 탕산 사이를 빠져나가 구강으로 돌아갈 것이니, 대왕께서는 여기서 발을 빼 형양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놀라 구강으로 돌아가는 경포는 늙은 범이라도 이미 상처 입은 범, 그 사냥은 용저와 항백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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