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한국축구의 희망’ 박주영

  • 입력 2005년 2월 15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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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의 희망’ 박주영(朴主永·20·고려대)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스페인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게 11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잠시 만난 이후엔 좀처럼 마주앉을 기회가 없었다. 원래 인터뷰를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라고는 해도, 박주영은 어느새 그만큼 ‘거물’이 돼 있었다. 박주영이 누군가. 새해 벽두부터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축구 천재’가 바로 그다. 카타르 8개국 초청대회 4경기에서 9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청소년팀과의 경기에서 한 골. 골문 앞에만 서면 허둥대거나 ‘뻥축구’에 급급한 한국축구에 혀를 차던 국민은 열광했다. 현란한 테크닉으로 수비선수를 몇 명 씩 제치고 별로 힘 안 들이며 골을 넣는 그의 모습은 분명히 지금까지 보던 한국축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1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캠퍼스. 인사차 학교에 들른 박주영을 어렵게 다시 만났다.》

“학교에 오니 너무 좋아요. 신입생 후배들이 밝게 웃으며 재잘대는 모습을 보니 부럽습니다. 아쉽기도 하고요. 저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올해 대학에 입학할 새내기들이 정문 광장에 모여 수련모임(MT)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박주영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청구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했지만 청소년대표팀과 소속팀 훈련에 쫓겨 캠퍼스 행사에 거의 참석한 적이 없다. 대학 생활의 낭만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보통 학생처럼 공부도 하고 미팅도 하고 싶어요. 하지만 통 시간을 낼 수 없습니다. 소속팀 훈련뿐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훈련해야 하잖아요. 훈련에 골몰할 때는 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이렇게 가끔 학교에 오면 미련이 많이 남아요.”

‘축구 천재’ ‘한국축구의 희망’ ‘아시아의 마라도나’…. 박주영에겐 늘 최상급의 찬사가 따라 다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재능 있는 유망주’ 정도로 불렸던 그는 어느새 ‘거물’로 성장했다. 이제 월드스타가 되는 일만 남았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뛸 때의 모습. 양종구기자

이날 만나자마자 박주영은 “인터뷰하기 싫어요”라는 말부터 했다. 어렵게 인터뷰 일정을 잡아도 기자는 애를 먹는다. 어떤 질문을 하든 돌아오는 대답은 늘 단답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왜 인터뷰를 싫어할까.

“전 저일 뿐입니다. 지난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전 변한 게 없습니다. 제 본분은 축구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터뷰가 어디 한번으로 끝나나요. 그러니 숨을 수밖에요. 무슨 얘긴지 아시죠?”

그래서 박주영은 아예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팬까지 멀리 하는 것은 아니다. 길에서 그를 알아본 팬이 사인을 요청하면 아무리 바빠도 거절하는 법이 없다. 팬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에서다.

축구인들이 그를 칭찬하면서 빼놓지 않는 한마디는 ‘성실한 선수’라는 점. 이날 인터뷰 자리에 함께 있던 조민국(曺敏國) 고려대 감독도 그랬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성실해요. 축구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도 한눈을 팔다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해버린 경우가 적지 않은데 주영이는 다릅니다. 분위기에 흔들리는 법이 없거든요. ”

박주영은 훈련이 끝나면 늘 성경을 읽는다. 그가 입학한 뒤 고려대 축구선수 대부분이 크리스천이 됐다.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 골을 넣은 뒤 화려한 세리머니 대신 그라운드에 꿇어앉아 기도를 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는 어머니(김옥란·55)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이번 전지훈련 내내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을 정도로 어머니는 그의 정신적인 지주다.

“어머니는 제가 아무리 잘해도 ‘수고했다’는 한마디밖에 안 하세요. 이번에 한 달이나 해외에 나갔다 온 뒤 대구 집에 내려갔는데도 맛있는 반찬 하나 안 해주시더라고요. 언제 봐도 어머니는 한결같아요.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늘 아침에 보고 저녁에 다시 보는 기분이라니까요. 저에게도 항상 초심을 유지하라고 하세요.”

박주영에게 가장 궁금한 한 가지. 그렇게 쉽게 골을 넣는 비결이 뭘까.

“그냥 볼을 차요. 기회가 왔을 때 이 생각, 저 생각하면 골을 못 넣어요. 왼발로 찰지, 오른발로 찰지, 또 인사이드냐 아웃사이드냐, 깔아 찰까 띄워 찰까 생각하다보면 상대팀 수비수가 와서 볼을 뺏겠죠?”

감각으로 찬다는 뜻이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축구 선수, 특히 스트라이커의 감각은 그만큼 중요하다. 몇 번 안 되는 찬스에 슛을 터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주영의 감각은 타고난 것일까. 그는 “타고난 것보다는 훈련으로 키운 게 더 많다”고 했다.

박주영은 지난해부터 시큰거리던 발목이 더 나빠져 당분간 쉬겠다고 했다.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저 이제 진짜 잠수 탑니다. 찾지 마세요. 킥킥.”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마라도나, 피구, 앙리… 이번엔 박주영?▼

‘마라도나, 피구, 앙리… 이번엔 박주영?’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20세 이하)축구선수권대회는 박주영에겐 월드스타로 도약할 기회. ‘신의 손’ 마라도나(1979년·아르헨티나)와 ‘그라운드의 마술사’ 루이스 피구(1991년·포르투갈), ‘쌕쌕이’ 티에리 앙리(1997년·프랑스) 등 최고스타가 모두 청소년대회를 통해서 떴다.

국내에서도 최순호 전 포항 감독(1979, 81년)과 신연호 호남대 감독, 김종부 동의대 감독(이상 1983년), 최용수(1993년)가 이 대회를 통해 스타로 성장했다. 박주영은 어떨까.

이용수 KBS 해설위원(세종대 교수)은 “박주영은 세계적인 스타로 뜰 수 있는 잠재력을 모두 갖췄다”며 ‘박주영 성공시대’를 전망했다. 빠른 스피드, 유연한 드리블, 침착함, 골감각 등 스트라이커의 자질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 이 위원은 “이번 대회를 통해 곧장 유럽 무대에 진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주영은▼

▽생년월일=1985년 7월 10일

▽신체조건=183cm, 73kg

▽포지션=스트라이커

▽출신학교=대구 반야월초(4학년 때 축구 입문)-청구중-청구고-고려대

▽대표경력=세계청소년선수권(2003년 12월),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표(2004년 10월)

▽취미=인터넷 서핑, 영화감상,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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