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금동근]드레스덴에서 히로시마를 보다

  • 입력 2005년 2월 14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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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동부의 고도(古都) 드레스덴은 영광과 비극의 역사를 함께 가진 도시다.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지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물이 많아 한때는 ‘북쪽의 피렌체’로 불렸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13일은 연합군 전투기 1000여 대가 이곳을 무차별 폭격한 날이다. 드레스덴에선 당시 숨진 무고한 시민을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열린다.

일요일이었던 13일의 60주기 추모식은 예년의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긴장 속에서 치러졌다. 극우파들의 시위 때문이었다.

독일 전역에서 모여든 5000여 명의 극우파 시위대는 횃불을 들고 시가 행진을 벌였다. 확성기에선 아돌프 히틀러가 즐겨 들었던 바그너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복수의 날은 올 것’이라고 적힌 피켓도 눈에 띄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독일에선 극우파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게다가 드레스덴을 주도(州都)로 하는 작센 주는 지난해 가을 지방선거에서 신(新)나치를 표방하는 국가민주당(NPD)이 10%에 이르는 지지율로 사상 처음 의석을 차지한 곳이다.

NPD는 얼마 전 연합군의 드레스덴 공습을 “폭탄에 의한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독일 쪽 피해를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상 NPD의 발언은 독일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즉각 NPD의 주장을 반박했다.

“우리 쪽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독일이 일으킨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숨졌는지부터 먼저 생각해야한다.”

슈뢰더 총리는 13일에도 베를린에서 특별 성명을 내고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역사를 곡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극우파를 제외한 독일 국민의 정서는 총리와 대체로 비슷하다. 극우파가 시위를 벌인 시간 드레스덴의 한쪽에선 4500여 명이 신나치에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해가 지자 드레스덴 주민들은 4000개의 촛불로 ‘이 도시는 나치에 몸서리를 친다’는 글씨를 새겼다.

올해 드레스덴 시정부가 내건 추모식의 주제는 ‘화해’였다. 이에 걸맞게 추모식에는 미국 영국 등 당시 연합군 정부 대표가 참석해 희생자의 묘역에 헌화했다. 지난달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행사 때는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이 참석해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가해와 피해의 선후(先後)를 떠나 희생자를 함께 추모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것은 전쟁 이후 독일이 꾸준히 보여준 과거사 반성 덕분이다.

드레스덴 행사는 자연스레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매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추모 행사가 열리지만 일본인의 피해만 강조될 뿐 과거에 대한 반성에는 아직도 인색하기 때문이다.

드레스덴 시정부는 최근 독일인 희생자를 기념하기 위해 오랫동안 폐허 상태로 남겨뒀던 프라우엔 성당의 복원을 끝냈다. 영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이 복원 자금을 보탰다.

주변 피해국의 반발을 무시하고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일본 정부는 드레스덴 추모 행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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