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의 아들인 찰스(로널드 콜먼)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전투에서 부상해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종전이 되던 날 안개를 틈타 수용소를 빠져나온 찰스는 우연히 만난 댄서 폴라(그리어 가슨)와 결혼한 뒤 ‘스미티’란 애칭으로 불린다. 어느 날 자동차 사고로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가와 정치가로 대성하지만 최근 3년간의 행적을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단서는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열쇠뿐이다.
▷남편의 행방을 찾아 헤매던 폴라는 우여곡절 끝에 찰스의 비서로 들어가 그를 보필하다 한 남자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가난한 시절 남편과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쓴다. 여러 해 뒤 어느 날.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해 지역구에 간 찰스는 무엇인가에 끌린 듯 마을길을 따라 들어선다. 언젠가 왔던 것 같은 집 앞에 이른 찰스가 늘 갖고 다니던 열쇠로 현관문을 여는 순간, 자신의 옛 애칭을 부르는 아내의 음성을 듣는다.
▷최근 전해진 한국판(版) ‘마음의 행로’는 이보다 더 애달프다. 추락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인이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과 결혼해 살아 오다 20여 년 만에 옛 가족을 만나게 됐으나 여전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연이다. 여인은 사고 전 2남 1녀를 두고 있었고, 남편은 아내를 기다리며 수절(守節)해 왔다고 한다.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현재의 남편과 24년이나 기다려준 옛 남편과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행로’가 아닐 수 없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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