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차범근 獨분데스리가 진출

  • 입력 2004년 12월 24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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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에서 아시아 축구는 축구로도 보지 않습니다. 가계약기간인 6개월 동안 인정을 받지 못하면 한국에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요.”

1978년 12월 25일 서독 분데스리가 최하위팀인 ‘SV다름슈타트98’과 입단 계약을 한 차범근(車範根)의 각오는 비장했다. 급여는 한 경기 뛸 때마다 500마르크(당시 약 13만 원). 그는 “월봉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매경기 출전시켜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차범근의 서독 진출은 순탄치 않았다. 12월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둔 축구협회는 그의 출국을 불허했다. ‘국가대표를 버리고 돈 벌러 간다’는 비난도 나왔다. 그는 “일본 선수 오쿠데라가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설친다”고 목메어 말했다.

결국 축구협회는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고 가는 것을 조건으로 출국을 허락한다. 차범근은 방콕대회에서 무패우승을 이끌어 화답했다.

1979년 7월 연습경기에서 혼자 4골을 터뜨린 뒤 명문 프랑크푸르트 구단으로 이적한 차범근은 8월 11일 도르트문트와의 개막전에 첫선을 보였다.

이 경기에서 차범근은 상대의 거친 태클에 혼쭐이 난다. 훗날 그는 “아시아에선 내가 치고 들어갈 때 수비수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이제 넘어지는 쪽은 나였다”고 술회했다. 몸싸움에 지기 싫어 스테이크만 먹으면서 체력을 키웠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차범근은 세 번째 경기에서 처음 골 맛을 본다. 그리고 곧바로 세 경기 연속 득점. 세 번째 골이 터진 날 프랑크푸르트 팀 감독은 “나는 테스트 10분 만에 그를 뽑았다. 그는 유럽 최우수선수가 될 자질이 있다”고 말했다.

감독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차범근은 10년간 308경기에서 98골을 기록해 외국인 선수로서 최고 성적을 올렸다. 또 성실한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은퇴를 선언하자 레버쿠젠 구단은 “당신은 훈련하는 모습만으로도 후배의 귀감이 되니 남아 달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영욕(榮辱) 어린 감독생활을 하던 그가 최근 K리그 우승으로 또다시 우뚝 섰다. 금발의 거구들 사이를 더벅머리로 질주하던 ‘차붐’. 그의 전설은 계속될 것인가.

김준석 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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