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폭행 피해자 두 번 울려서야

  • 입력 2004년 12월 12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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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도시에서 폭력서클을 조직한 고교생들이 여중생 다섯 명을 집단 성폭행하고 폭력을 휘두른 사건은 가증스러운 범죄다. 청소년들의 인성(人性)이 이토록 황폐화된 데는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나이 어린 피해 여중생과 그 부모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한데도 경찰의 수사 자세는 문제투성이다. 조사경찰관이 피해 여중생을 모욕하는 말을 하는가 하면 여경의 조사를 받게 해달라는 피해자 측 요구를 거부한 처사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성폭행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이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피해 여중생들의 얼굴을 노출시켜 가해 학생 학부모에게서 ‘몸조심하라’는 위협을 당하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범인식별실을 놓아두고 가해자들이 보는 데서 피해자가 성폭행 가담자를 가려내게 한 것도 피해자 보호에 무신경한 처사다.

피해 여중생 학부모가 경찰서 복도에서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서 “뒷일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협박을 받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고 한다. 무릎 꿇고 사죄해도 부족할 처지에 이만저만한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니다. 오죽하면 경남지역 여성단체들이 철저한 수사와 피해자 보호를 촉구했겠는가.

격분한 누리꾼(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가해 학생들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도 잘못이다. 청소년 범죄자의 신원이 공개돼서는 안 된다. 수사와 판결이 종결되지 않은 사건에서 자칫 관련 없는 청소년의 명예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 범죄에 가담한 정도와 반성하는 태도도 고려해야 한다. 범죄자 처벌은 국가가 하는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어떤 형태로든 개인이 범죄자에게 린치를 가하는 사형(私刑)은 허용될 수 없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이 사건에서 엄격하고 공정하게 국가형벌권을 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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