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인간’…외계로 납치된 男女, 사랑이 구원?

  • 입력 2004년 11월 19일 17시 26분


◇인간/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160쪽 8800원(단편영화 DVD포함) 열린 책들

최근 몇 년간 ‘뇌’와 ‘나무’로 국내 독서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사진)가 지난해 10월 프랑스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그는 2002년 10월에는 ‘나무’를, 2001년 10월에는 ‘뇌’를, 그리고 올해 10월에는 아직 국내에 번역이 안 된 ‘우리는 신’을 프랑스에서 펴냈다. 11월 초 수상자를 발표하는 공쿠르, 르노도, 메디치 등 주요 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매년 10월 새 책을 출간해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전략은 대중소설계의 스타가 갖는 자신감처럼 보이기도 하고, 정통 프랑스문학의 대오에서 떨어져 나온 작가의 야유 같기도 하다.

베르베르에 따르면 이번 작품 ‘인간’은 희곡이다. 그러나 지문과 누구의 대사인지 명기해 놓는 희곡 규칙을 따르지 않아, 얼핏 봐선 대화 위주의 소설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글이 분명 희곡인 이유는 서커스단의 호랑이 조련사인 여성 사만타와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과학자 라울 두 사람이 좁다란 유리방에 갇혀 나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대를 염두에 두고 씌어졌기 때문이며 실제 이 작품은 9월부터 파리 ‘코메디 바스티유’에서 공연되고 있다. 책은 1년여 만에 약 30만부가량 팔렸다.

이런 인기와 여전한 재미에도 불구하고 ‘인간’에서 드러나는 작가 자신의 인간 이해와 기량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보인다. 우선 그는 외계인에게 납치돼 태양계 바깥 행성의 밀실에 갇힌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 존재로서 인간의 나약함과 우스꽝스러움, 그 출구로서의 사랑을 말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도 진지하지 않은 채, 애니메이션 코미디처럼 날렵하게.

라울은 자신이 다룬 실험용 햄스터들의 생태를 내려다본 이야기를 하고, 사만타는 자기가 어떻게 ‘큰 고양이’(호랑이)를 길들였는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결국 밀실에 갇힌 자신들도 햄스터나 ‘큰 고양이’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된다. ‘커다란 존재’가 바깥에서 관찰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 둘이 상대에게 보이는, 좋고 싫어하는 감정에 따라 굶주린 그들의 머리 위로 콘칩이 떨어지거나 전기충격이 가해지기도 한다. 어떤 외계세력이 자신들에게 ‘접촉이 잦은 어떤 행동’을 하게끔 ‘조련’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갖게 된다.

이 같은 이야기의 얼개는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부터, 미국 펄프 픽션들에 나오는 외계인의 인간 채집 이야기, 필립 딕의 과학소설들에서 보이는 비범한 존재론,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 등을 버무려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작가가 ‘개미’에서 보여 줬던 치열한 자료 취재나 ‘뇌’와 ‘나무’를 수놓았던 산뜻한 착상과 반전의 힘들은 반감된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은 베르베르가 가진 강박관념의 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철학성이 들어간 과학소설을 써내야 하며, 매년 10월 출간하기 위해 다작(多作)을 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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