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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1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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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草汀 金相沃) 선생이 부인 별세 후 곡기를 끊고 애통해 하다가 장례 후 산소에 다녀와 그 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향년 84세로, 부인이 세상을 뜬 지 꼭 닷새 만의 일이다. 낙상(落傷)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노년을 보낸 시인을 15년간 ‘분골쇄신(粉骨碎身)’ 돌봤다는 아내와, 병석의 부인에게 “자네를 전생에서 본 것 같네. 우리의 이생은 다 끝났나 보네”라고 독백했다는 시인의 애틋함이 가슴을 적신다.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가 쓴 소설 ‘사랑’의 주인공인 ‘안빈’의 실제 모델인 고(故) 장기려(張起呂·1911∼1995) 박사는 북한에 남겨두고 온 아내를 그리며 40여년을 수절했다. 옛 애인이 남편과 사별하자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하며 맞아준 초혼 남편도 있고, 해마다 새 남편과 함께 전 남편 기일에 맞춰 묘소에 꽃다발을 바치는 재혼 아내도 있다. 바람피운 아내를 감싸며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매력이 있으면 그랬겠느냐”는 어록을 남긴 저명인사도 있지 않은가. 어디 인간뿐이랴. 얼마 전에는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짝을 슬퍼하며 애처롭게 몸부림치는 제비의 연속 사진이 누리꾼(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한 일본 신문의 올 상반기 히트상품 조사에서 ‘순애보 상품’이 1,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순애보를 소재로 한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TV 드라마 ‘겨울연가’가 1, 2위를 휩쓸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통상 10년 주기로 ‘순애보’ 붐이 반복되는 것으로 본다. 넘치는 성(性)과 불륜에 대한 반(反)작용이라는 것이다. ‘시의 날’ 전해진 학(鶴)같이 살다간 노(老)시인의 순애보에 세상이 이처럼 옷깃을 여미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만큼 순애보에 목말라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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