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진영]법무장관과 그의 ‘동지’들

  • 입력 2004년 10월 13일 18시 17분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는 좀 특이한 행사가 있었다.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의 ‘고시동지회’ 회장 취임식이었다. 고시동지회는 그 어렵다는 고시 합격자들의 친목 모임. 사법 행정 외무 기술고시에 합격한 2만5000여명이 회원으로 있는 모임이다.

김 장관의 회장 취임식에는 현직 검찰 간부 ‘동지’들도 상당수 참석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법무부는 고시 출신 장관이 회장을 맡는 관례에 따라 최종찬(崔鍾璨)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후임으로 김 장관이 추대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장관이 이 모임의 회장을 맡은 것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도 많다. 사정(司正)기관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이 사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을 맡는다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고시동지회의 존재 자체다. 고시동지회 관계자는 “회원간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순수 친목단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설명만으로 그 모임의 존재 의의를 수긍하기는 어렵다.

고시동지회 회원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시합격만 가지고 동지가 될 수 있을까. 혹시 함께 출세한 사람들의 ‘직역(職域) 감정’으로 뭉친 것은 아닌가. 만일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끼리 동지 의식을 가진다면, 고시에 합격하지 않은 다른 공무원이나 국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헌법 제11조 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떤 형태로든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양반이나 귀족 등의 계급제도와 의식을 타파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이다.

물론 고시 합격자들을 특수계급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들끼리 특별한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질 경우 특별한 계층을 형성할 수 있다는 시각이 전혀 엉뚱한 것도 아니며 이 같은 측면에서 고시동지회의 존재가 헌법정신과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많이 배우거나 많이 가진 사람들끼리는 좀 덜 뭉치는 게 미덕이 되지 않을까.

황진영 사회부 bud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