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장준익]북한약속 믿고 국보법 폐지하나

  • 입력 2004년 9월 1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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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익
국가안보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국가와 국민의 생존도 없으므로 어떤 정책도 이보다 앞설 수 없다. 그래서 국가안보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 여당의 국가정책을 보노라면 국가 생존에 위협을 느낄 만큼 불안하다. 국가보안법을 지금 폐기하지 않으면, 과거사 청산을 지금 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는가? 수도 이전에 국가 존망의 문제라도 걸려 있단 말인가? 더 다급하게 해결해야 할 안보문제와 경제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최근 한 방송 대담 프로그램에서 집권 여당 책임자가 “우리가 먼저 국보법을 폐기하면 북한도 노동당규와 헌법을 바꾸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아연실색했다. 1990년대 초반 북한 핵문제가 대두됐을 때 북한은 오히려 한국에 배치된 미군 핵을 철수하라고 주장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미군 핵을 철수하면 북한도 핵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으로 주한미군 핵 철수에 동의했다. 더욱이 북한을 믿고서 남북한 비핵화선언에 서명까지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북한은 오히려 핵 생산을 가속화했고 1994년 미-북간 핵 합의 이후에도 비밀리에 핵개발을 계속해 이미 여러 개의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 합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북한에 대해 “우리가 국보법을 폐기하면 북한도 노동당규를 폐기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순진해도 너무 순진한 얘기다. 현 정부는 국가의 자존심과 자주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런 정부라면 ‘국보법을 폐지하라’는 북한의 주제넘은 간섭에 항의하는 게 옳다. 일말의 자주적 의식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북한의 정책을 자존심 상하게 그대로 우리의 정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국가안보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정책이 어떤 것인지 정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장준익 예비역 육군 중장·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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